델리에서 기차를 타고 여섯 시간쯤 달렸을까, 어느새 자이푸르에 도착했다. 도착 시간은 새벽 5시즈음.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야간기차가 생각보다는 편했지만 그래도 몸은 찌뿌둥했다. 무엇보다 씻을 곳이 없는 게 참... 물론 조그만 세면대가 하나 있긴 한데 양치나 고양이 세수 외에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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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서 대기하는 짐꾸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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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세계에서 세 번째인가 네 번째로 긴 철도망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는데 역시나 수송 물량도 엄청나다. 심지어는 아래와 같이 바이크도 기차로 실어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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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주인은 어디 있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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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왠지 모르게 화가 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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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 안에 소가 돌아다니기도 하는데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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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역무원에게 뇌물을 주지 말라는 안내문 |
자이뿌르역에서는 미리 알아둔 숙소로 곧장 갔다. 홈스테이를 표방하는 숙박시설이었는데, 실제로 3층 집에 2층까지는 주인 가족이 살고, 3층의 방 네 개에 숙박객을 받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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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의 3층 베란다. 백팩커에게는 분이 넘치는 시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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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의 저녁식사. 호화 가정식이다. |
자이뿌르에 머무르는 동안 근처의 란탐보르 국립공원에 다녀왔다. 근처라고는 하지만 기차로 2시간이 걸리는 곳이다. 이번에는 일부러 최하등칸에 타봤다. 기차의 최하등칸 체험에 대해서는 이전에 써둔 글이 있어 그대로 가져오고자 한다.
세계에서 세번째로 긴 철도망을 가지고 있다는 인도. 기차에는 총 6등급의 객실이 있는데 그 중 최하등칸(요금은 100km당 약 900원 정도)에서 압축된 인도를 볼 수 있었다. 화장실 변기라는 곳은 선로로 뚫린 구멍이었고, 위생의 개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1인용 좌석에는 두 명이, 4인용 좌석에는 일곱 명이 앉아있었으며, 위쪽의 짐칸에마저 두세명의 사람이 포개어져 자고 있던 그 칸에 외국인은 나 혼자였고 달리는 열차 옆 길은 승객들이 던진 쓰레기로 한가득이었다.
객차는 출근시간의 신도림발 2호선만큼 발디딜 틈 없이 꽉 차 있었지만, 사과와 땅콩을 파는 소년은 마법이라도 부리듯 커다란 바구니를 든 채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다녔다.
한 준수한 청년은 땅콩 한 봉지를 사서 까먹더니 껍질을 그대로 바닥에 버렸다. 얼마 뒤 기껏해야 다섯 살로 보이는 비쩍 마른 맨발의 꼬마가 나타나더니 사람들 발 밑을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제 키만한 빗자루로 먼지 속에 파묻힌 땅콩 껍질을 쓸어갔다. 몇 분 뒤 다시 나타난 맨발의 꼬마는 사람들에게 청소의 댓가로 동전을 요구했다.
승객들의 눈치가 보여 안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했고 내린 뒤에야 겨우 한 컷 찍었다. 그들의 기분이 나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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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의 최하등칸. 창문도 없고 사람들이 매달린 저 상태 그대로 달린다. |
이렇게 도착한 란탐보르 국립공원은 호랑이가 기념물이라는데 사파리를 가서도 정작 호랑이는 보지 못하고 낙타와 원숭이만 잔뜩 보고 돌아왔다. 사파리는 지프를 이용했는데 3시간에 2200루피(약 37000원)였다. 너무 비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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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탐보르 국립공원 1. 지프는 이렇게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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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탐보르 국립공원 2. 모스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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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탐보르 국립공원 3. 먹을거리를 안고 있는 원숭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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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탐보르 국립공원 4. 이렇게 사람을 위협해 먹을거리를 갈취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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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탐보르 국립공원 5. 공원 내부의 옛 요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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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탐보르 국립공원 6. 다 무너져 가는 옛 요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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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탐보르 국립공원 7. 주변의 풍경 |
란탐보르 국립공원 바깥에는 이렇게 낙타가 돌아다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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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이꾼과 낙타 |
란탐보르 국립공원 투어를 마치고 다시 자이뿌르로 돌아온 뒤에는 여기저기 쏘다녔다. 자이뿌르는 핑크시티라는 별명에 걸맞게 도시 곳곳이 분홍색(사실상 주황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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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뿌르 1. 도시 출입문 중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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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뿌르 2. 창문으로 한 여성이 바깥을 하염없이 내다보고 있다. 그녀도 카스트 제도의 구성원이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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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뿌르 3.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영화관 라즈 만디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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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뿌르 4. 도시 내 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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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뿌르 5. 도시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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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뿌르 6. 가이드북에도 나온 라씨인데 그냥 그랬다. |
숙소로는 걸어서 돌아가보기로 했다. 단 그냥 걸어가면 재미가 없으니 철로를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도중에 길을 잃어버려서 3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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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1. 저 개는 어디로 가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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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2. 기차가 지나갈땐 얼른 옆으로 비켜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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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3. 난데없는 STOP 사인 |
저 STOP은 열차를 향한 걸까, 아니면 나같은 무단 보행자를 향한 걸까. 1분쯤 고민했다. 저 앞을 봐도 위험요소는 보이지 않는데 왜 멈추라는 걸까. 일단 계속 가보기로 했는데, 그 고민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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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4. 외다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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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5. 외다리 위에서 |
STOP 사인을 지나치고 얼마 걷지 않아 이런 다리가 나타났다. 이 다리를 건너기 전에 내 뒤나 앞 멀리에서 기차가 달려오고 있지는 않은지 확실히 확인해야만 했다. 기차가 온다고 해서 이 다리 위에서 아래의 찻길로 뛰어내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리를 건너고 조금 더 걷다가 인도인 소년 무리를 만났다. 철길 옆에서 자기네끼리 어울려 놀다가 나를 발견하자 큰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처음엔 해코지를 하려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잠깐 살펴보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오래 대화를 끌지는 않고 얼른 빠져나왔다.
숙소로 돌아와 잠깐 쉬다가 야간에는 주 정부에서 운영하는 시티 투어를 하러 갔다. 아래와 같이 생긴 조그만 트럭에 타고 도시 야경을 감상하는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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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시티 투어 1. 창문이 없어 꽤 추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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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시티 투어 2. 주 정부에서 운영하는 곳이라도 쇼핑센터는 가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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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시티 투어 3. 무언가 조각을 만드는 것도 보여준다. |
같이 탄 승객들이 물건을 살 기미가 보이지 않자 쇼핑 센터 직원들이 조금씩 초조해했다. 이 와중에 나는 그들에게 왜 밤에도 일을 하는지, 일은 할 만한지, 승객 중 중국인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를 물으며 귀찮게 하다가 결국 외면받았다. 티셔츠나 한 장 사고 물어볼걸 그랬나 보다. 캄보디아의 북한 식당에서도 북한 여대생에게 질문을 퍼붓다가 참 호기심이 많은 청년이라는 칭찬(?)을 들었는데 여기서도 단박에 그런 이미지가 박히고 말았다.
승객들과 점원들 사이에는 줄다리기가 한참 이어졌다. 결국 참다못한 승객 중 몇 명이 그들(가이드와 상점 점원들)이 만족할 만큼 물건을 구입하고나자 차에 다시 올라탔다. 이제 드디어 야경을 감상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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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시티 투어 4. 조명이 켜진 라즈 만디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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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시티 투어 5. 왕궁(?) |
몇 군데 더 둘러보며 다니다가 나이트 투어는 싱겁게 끝났다. 자이뿌르에서의 3일간 일정이 끝난 셈이다. 하지만 자이뿌르의 이야기가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인도에서 2주간 날 괴롭힌 물갈이가 시작된 건 바로 이 곳 자이뿌르에서였다. 어느 순간 갑자기 배가 아프고 머리가 어질어질하더니 그 유명하다는 인도산 물갈이가 시작되었다. 이게 2주나 갈 줄은 정말 몰랐다. 하루는 먹고, 하루는 쏟아내고, 먹고 쏟고 먹고 쏟고, 결국 아무것도 먹지 않고 이틀씩 굶으면서 버티는 고행의 연속이었다. 생수만 계속 마시면서 걸어다니다보니 나중엔 거의 탈진할 것 같았다.
배탈이 시작된 첫 날 이야기를 돌아가보면, 숙소의 음식은 절대로 흠잡을 데가 없었고 아마도 밖에서 사먹은 간식이 배탈의 원인 같았다.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자이살메르행 야간기차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나중엔 힘이 다 빠져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거실의 소파에 드러누웠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 이 때 젊은 사장이 이것저것 챙겨준다고 레몬수도 만들어주었다. 참 고마웠다. 체크아웃했으면 빨리 나가는게 손님의 도리거늘, 난 그것도 못 지켰는데 이래저래 도와주니 정말 고마웠다.
이렇게 고생을 하다가 겨우 자이살메르행 야간 기차를 잡아탔다.
자이뿌르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너무 재밌게 잘 읽었어요~ 결국 가셨네요 ~~ 멋져요~~ 저는 곧 중국으로 먼저 떠나요. 중국-> 미국-> 캐나다-> 남미-> 호주로 계획했어영...ㅎ 이타세에서 넘어온 장미입니당...
답글삭제장미님 반갑습니다! 재밌게 읽으셨다니 기분이 좋습니다^^ 바이크 타고 가시는 건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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