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꼬창

태국 꼬창
태국 꼬창(2014)

1/04/2015

라오스 여행 1부 - 2박3일에 걸쳐 국경을 넘다

 태국 다음 여행지는 라오스였습니다. 저번 글에도 언급했다시피 저는 태국에서 라오스로 국경을 육로로 넘어갔는데요, 제 인생 처음으로 시도한 버스 월경이었습니다. 때문에 여러 돌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어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지요.

 원래 계획은 태국 치앙마이에서 국경 치앙콩까지 버스를 타고 간 다음에 배를 타고 건너가 라오스 국경도시 반훼이싸이에서 버스를 타고 루앙프라방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1일차
 치앙마이 : 9시 출발(버스 5~6시간)
 치앙콩(태국 국경) : 2시 도착
 출입국 심사 : 넉넉잡아 2시간
 반훼이싸이(라오스 국경) : 16시 도착, 버스터미널까지 뚝뚝 이용(15분)
 반훼이싸이 버스터미널 : 18시 출발(버스 12시간)

 2일차
 루앙프라방 : 6시 도착

 예상 여정은 이랬습니다. 적어도 '예상'은 그랬지요.
 하지만 저는 다음날이 아닌 다다음날, 그러니까 3일째 오후 3시에 루앙프라방에 반시체 상태로 도착하게 됩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먼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9시에 왔어야 할 픽업차량은 10시에야 도착했고(태국에서 장거리 투어리스트 버스는 대부분 픽업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티켓을 미리 예매한 고객의 숙소를 모두 돌아다니며 하나씩 하나씩 픽업을 하는 식이죠. 그런데 픽업 차량이 제 숙소에 도착했을 당시 제가 첫 승객이었던 걸 보면 버스는 아예 처음부터 지각출발을 한 것입니다.), 이리저리 치앙마이를 돌아다니며 분주히 나머지 승객을 태우다보니 어느덧 시간은 11시가 되었습니다.

 저는 9시에 출발을 하더라도 시간이 빠듯한 걸 알고 있었어요. 미리 예약한 라오스 국경발 버스는 18시 출발이었는데 이걸 타려면 국경을 15~16시엔 넘어가야만 했죠. 대충 저녁끼니도 때울 생각을 하면요.

 그런데 11시에 출발하면 물리적으로 그게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픽업 차량은 왜 늑장을 부렸느냐?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는데, 해당 픽업 차량 내에서 당일 버스 티켓을 구매한 승객은 저뿐이었습니다. 다른 외국인들은 다음날 티켓을 가지고 있거나, 시간대가 완전히 다른 보트 티켓을 가지고 있었죠.

 어쨌든 전 치앙콩에 15시가 조금 넘어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픽업 차량에서 만난 한 중국인 할아버지가 저와 같이 버스를 이용하겠다며 합류를 제안했고(그런데 전 승락한 기억이 없는데 어느새 졸졸 따라오시더군요^^;;) 어쨌든 같이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태국 출국 심사대에서 발생했습니다. 담당 공무원이 제 여권을 받아가더니 방콕 공항에서 받은 Departure Card가 어디 있냐고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거? 버렸는데?"했더니 대답하기를..."그래? 방콕 가서 다시 받아와."

 ...

 치앙콩에서 방콕까지 버스로 18시간 거리인데...방콕 공항을 다녀오라고? 한참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더 웃긴 건 그 사람 책상 위에 새 Departure Card가 몇 십장 쌓여있었다는 거에요. 제가 그걸 보고 "헤이. 이거 주면 되지 않나? 한 장만 줘라." 했더니 절대 안 된답니다. 

 그래서 3초쯤 고민한 뒤에 '아 아마 내 종이(바트 또는 달러라고도 하는 바로 그 초록색 종이)와 교환을 원하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지갑을 꺼냈더니 단호하게 "노!"랍니다. 허 참...

 정말 방콕을 다녀와야되는지 진지한 고민을 하며 실랑이를 20분쯤 벌였을까, 결국은 제 배낭을 뒤집어서 바닥에 전부 쏟아내고 Departure Card가 정말 없다는 걸 확인시켜 준 뒤에야 겨우 새 Card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냥 무료로 주더군요. 그 몇 십장 쌓여있는 파일에서 한 장 툭 꺼내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툭 주더군요. 툭. 툭 주더란 말입니다.


치앙콩 출국 심사대. 저기 책상이 실랑이가 벌어졌던 곳입니다.


나와 힘든 여정을 함께했던 중국인 할아버지



 결국 이렇게 시간이 지체되었고, 어쨌든 태국 출국 심사대를 넘어가긴 했습니다. 같이 갔던 중국인 할아버지도 비슷한 문제에 걸려 내내 저와 함께했죠.

 그런데 이 치앙콩-훼이싸이 국경이 옛날엔 다리가 없어 보트로 넘어갔었다는데 어느새 다리가 생겼답니다. 문제는 다리를 넘어가려면 셔틀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는 거...가드 말로는 걸어서 절대 못 간대요. 이유를 물어보니 그냥 무시하더군요. 그래서 '하 그런가 보다...그럴 수도 있지 뭐.'했습니다. 장담하는데 태국-라오스 국경을 넘으면서 이 말을 속으로 26번 정도는 되뇌었던 것 같아요.

셔틀 버스를 기다리며. 라오스 국경이 바로 저기인데! 왜 못 간다는 것이냐.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 드디어 셔틀을 타고! 2분 정도 달려서! 라오스 입국 심사대로 갔습니다. 네. 차 타고 2분 달리더니 내리래요. 다리가 그 정도로 짧아요. 긴 다리면 걸어서 못 가게 하는 걸 이해하겠는데 그 짧은 다리를 도대체 왜?? 아직도 의문입니다.


국경의 강과 다리. 강폭으로 미루어 알 수 있지만 다리 정말 짧습니다.


 한국인은 라오스 여행시 15일까지 무비자 적용이 되길래 입국 심사대는 가뿐히 통과했지만 다음 난관은 또 있었습니다. 버스 터미널까지 운행하는 트럭 택시, 일명 썽태우가 출발을 안 합니다. 승객이 가득 차야 간대요. 30분 정도 기다려서(이 때 시간은 이미 6시 임박) 가득 찼어요. 그런데 아직도 안 가요. '도대체 언제 가려나'하는 고민을 하는 사이에 썽태우는 가득 찬 걸로도 모자라 뒤의 난간에 승객들이 매달리더군요. 운전 기사 왈, "거기에 서시오. 그게 당신 자리요." 역시 전  '하 그런가 보다...그럴 수도 있지 뭐.'


라오스 입국심사대
썽태우 탑승 전 촬영한 WELCOME TO LAOS.
문제의 썽태우는 사진 왼쪽 아래에 파란 저것입니다.


 결국 18시 정각이 되어서야 썽태우는 출발을 했습니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시간은 이미 18시 15분. 루앙프라방행 버스는 당연히 떠났지요. 시간을 지켜 떠났다는게 어찌나 야속하던지...이렇게 전 국경에서 떠나는 마지막 야간 버스를 놓쳤습니다. 결국 국경 근처에서 하룻밤을 죽은 도마뱀이 나오고(살아있는 도마뱀이 차라리 나을 것 같아요. 죽은 도마뱀은 청소도 안 한다는 얘기 아닙니까.) 가격만 더럽게 비싼 호텔에서 강제로 묵게 되었어요. 이 때만 해도 위생 관념이 굉장히 철저했던지라 그 곳에서 자는게 매우 불편했지만 이후 인도를 여행하며 그 철저한 위생 관념은 여지없이 무너지게 됩니다.

 다음날 일어나서 아침을 먹으러 갔어요. 인적이 드문 아침거리를 30분쯤 터벅터벅 걷다보니 드디어 쌀국수집이 하나 나왔어요. 그런데 문제는 제 인생에 돼지고기 알러지가 딱 한 달 동안 생겼다가 사라졌었는데, 그게 바로 이 때였어요. 그런데 그 쌀국수의 토핑이 아무래도 돼지고기 같더란 말입니다. 잠깐 고민을 했죠. '돼지고기가 라오스어로 뭐지? 에이 모르겠다. 영어로 말해보자.' 그래서 "이 토핑이 Pork냐"했더니 주인이 못 알아들어요. 다시 한 번 "Is this Pig?" 했더니 그래도 모르더군요. 돼지코를 흉내내며 킁킁거려볼까 하다가 그냥 고기 빼고 먹자하는 생각이 들어서 고기를 빼고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 간과했던게, 고기를 빼고 먹더라도 국물은 돼지로 우려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습니다. 아침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두드러기들이 솟아오르더군요. 제대로 후회했습니다. '그냥 먹지 말고 굶을걸...' 그래서 점심과 저녁은 굶기로 했습니다.

 체크아웃시간이 11시이길래 짐을 싸서 체크아웃하고는 버스터미널로 향했습니다. 터미널에 도착하자 시간은 11시 반. 버스 시간은 18시. 6시간 반 동안 그 더운 곳에서 수양 제대로 했습니다. 여행에 라이프오브파이라는 책을 가지고 갔었는데 이거 읽으면서 버텼어요. 그런데 기적같이 딱 그 순간에 이런 구절을 발견했어요.

 '인생은 때때로 마음먹은대로 풀리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상황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할 수밖에.'  마침 파이가 탄 배도 침몰하고 벵갈호랑이와 단둘이 보트에 남겨진 상황이더군요. 파이를 보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래 난 적어도 호랑이는 없잖아!'

 이렇게 혼자 주접떨다가 18시에 드디어 야간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이제 드디어 제대로 가나 싶었더니 왠걸, 길이 아주 엉망이었습니다. 아스팔트, 가로등, 가드레일도 없는 꼬부랑 낭떠러지 절벽길을 2층 버스를 타고 가는 건 아주 고역이었고 현지인들조차 앉은 자리에서 방금 전에 먹은 저녁을 게워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저녁을 안 먹었기에 참 다행이었지만 버스 탈 때 나눠준 비닐봉지의 무궁한 효용성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찍은 산길 사진 1.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진짜 저걸 넘어갑니다.
산길 사진 2. 그 때 기억에 갑자기 허리와 엉덩이가 아파오네요.

 그렇게 토악질 합창과 함께 쪽잠으로 달리기를 10시간, 중국산 중고 버스는 해발 1500미터 산 정상에서 부품 노후화로 바퀴가 빠졌습니다. 사방이 깜깜한 새벽 네 시였고, 운전기사는 수리 불가를 선언했죠. 이렇게 우리는 해발 1500미터 정도 되는 산맥 한 가운데서 오들오들 떨며 새벽을 보냈습니다.
버스 수리 장면

 아침이 되어 해가 뜨자 운전기사와 보조는 수리를 시작했고 세 시간만에 수리를 마친 우리는 다시 머나먼 여정을 출발하려 했지만... 20분만에 길이 무너져내리고 있는 현장을 마주했습니다. 어떻게 되었냐면요, 버스가 코너를 돌아나가자마자 버스 전방 10미터에서 절벽 바위가 폭격하듯이 굴러떨어져 길을 부수는 현장을 마주했습니다. 버스 기사, 2초간 경악하더니 미친듯이 후진해서 겨우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산 외길에서 우리는 포크레인을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한참 기다리니 산 반대편에서 포크레인이 올라와 길을 터주더군요. 이렇게 우리는 다시 출발했습니다. 1시간 가더니 멈춥니다. 이 때 시간은 태국에서 출발한지 3일째 되는 날 낮 12시였어요. 밥 먹으라고 세우긴 했는데 라오스 산골 식당에서 뭘 팔고 있었을까요? 개구리, 메뚜기, 귀뚜라미, 곱등이(도 분명 보았다고 확신합니다. 분명히 본 것 같아요. 그 형체를), 그리고 파리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언제 도살되었는지도 모르는 닭고기. 네, 그냥 굶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부터 제 위생 관념은 조금씩 해이해지기 시작했고 일주일 뒤에는 방비엥에서 개구리를, 열흘 뒤에는 비엔티안에서 귀뚜라미를, 그리고 두 달 뒤 인도에서는 파리가 붙어있는 고기도 잘 먹게 됩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버스에 같이 탄 유럽인 4명과 저는 굶었지만 저와 같이 있던 현지인들은 맛있게 먹더군요. 그 사람들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 후 버스는 다시 출발했고, 결국 루앙프라방에 오후 3시에 도착하게 됩니다.

 계획대로라면 20시간으로 끝났어야 할 육로 입국은 결국 2박3일에 걸친 대장정으로 이렇게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여기까지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군요. 루앙프라방, 방비엥, 비엔티안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 쓰도록 할게요.


  이 때 이동한 루트입니다. 빨간색 구간이 치앙마이-루앙프라방(54시간 소요)인데 그 전에 버스로 이동했던 비슷한 거리의 방콕-치앙마이 파란색 구간이 12시간 걸렸으니 짐작할 만하지요^^



 좀 더 확실한 비교를 원하신다면, 남한 지도가 여기 있습니다. 네, 믿을 수 없겠지만 남한 정말 작죠? 왜곡이 없는 실제 사이즈입니다.
 이렇게 보니 치앙마이-루앙프라방 구간이 서울-부산 구간과 거의 비슷하네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2박 3일에 걸쳐 가는 걸 상상해봅시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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