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품고 있는 히말라야, 히말라야에 드디어 왔다.
|
3일 반을 속보로 걸어 도착한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의 전경 |
(참고로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 눈이 있는 산맥을 뜻한다. 다시 말해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조선사람들이 태백산맥을 두고 산맥, 산맥 그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영국인들이 들어오더니 "이 곳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sanmaek이라며?"하면서 정상 정복을 하고서는 'sanmaek 정복기', 'sanmaek, 그 전설에 대하여' 등등의 책을 내는 것과 같은 셈이다. 히말라야를 히말라야 산맥이라고 부르는건 사케를 사케주라고 부르는 것과 같고.)
어쨌든 간에 나는 그 히말라야 산맥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해발 4130m)와 푼힐 전망대(해발 3120m)를 찍어 보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7~8일 코스, 푼힐 전망대는 4일 코스이다. 두 지점을 이어주는 지름길의 존재를 무시한다면 두 곳을 돌아오는 건 총 11~12일 코스인 셈인데, 나는 이걸 8일 안에 해보기로 했다(원래는 7일만에 끝내고 싶었는데 현지인이 "너 그러다 죽어"하길래 하루 늘렸다).
그 유명한 한국인의 빨리빨리 정신 어디가겠는가. 참고로 빨리빨리는 현지인 사이에서도 유명하더라. 산행 중에 몇 번이나 들은 말이 "코리안 발리발리 노 굿. 슬로울리 슬로울리 굿."이었으니.
산행의 일반적인 기점인 포카라에서 나는 포터 하나와 함께 출발했다. 부유한 사람들은 택시를 타고 산 바로 아래까지 가서 편안히 유람을 즐긴다던데, 나는 가난한 배낭여행자라 로컬 버스를 타고 갔다. 참고로 택시비는 2200루피(약 24000원), 버스비는 100루피(약 1100원)이다.
아 그리고 산행 전에 준비를 한다고 총 1400루피(약 15000원)을 주고 아이젠과 스틱도 샀는데 바보같이 떠나는 날 아침에 숙소 침대 밑에 두고 왔다. 아이젠은 없는 셈 쳐야 했고, 스틱은 산에서 구한 대나무 막대기를 써야 했다.
|
로컬 버스지만 어쨌든 전면 유리에는 투어리스트라고 써 있다. 운전하는 내내 문을 열고 달리는 건 충격과 공포. |
|
갑자기 차를 멈춰 세운 군경.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다만 한참 버티던 남자 몇 명이 밖으로 끌려나가더니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
|
버스 내부. 키 큰 유럽인들은 저렇게 고개를 숙이고 가야 한다. 호빗 만세! |
이런 식으로 2시간 여를 달려 안나푸르나의 끝자락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걸어야 한다.
|
산행 퍼밋 검문소. 여기서 도장을 찍고 가야 나중에 실종/사망시 시체 확인이 쉬워진다. 농담이 아니고 진짜로. |
|
첫 번째로 만난 시냇물. 세차게 흐른다. |
|
한국인이 정말 많이 사랑하는 안나푸르나답다. 반대로 에베레스트는 일본인 천지라고 한다. |
|
이런 다리도 건너고 |
|
풍광은 좋지만 영 불안해 보이는 절벽길. 앞에 가는 사람이 포터다. |
|
중간중간에 이런 지도도 나온다. 안나푸르나봉은 지도에도 안 나올 정도로 아직 멀다. |
|
제법 튼튼해 보이는 나무 다리 |
|
드디어 저 멀리 안나푸르나 사우스봉이 보인다. 난 앞으로 3일 반 동안 저기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
|
짐을 싣고 다니는 당나귀들이 보이면 잽싸게 옆으로 비켜야 한다. 안 그러면 절벽으로 밀려 떨어지는 수도... |
|
일정 고도 이상부터는 육식이 금지다. 하지만 달걀은 허용된다. 나는 네팔인들과 '달걀은 되고 닭고기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해보려다가, 산장에서 쫓겨날 것 같아 말았다. |
|
생강차. 고산병 예방에 좋다고 해서 이걸 하루에 2~3L씩 마시면서 다녔다. 결국 고산병으로 고생할 일은 없었다. 물병은 현지에서 산 6000원짜리. 왼손 손목에 있는 건 태국에서 산 3천원짜리 시계다. |
|
산행 3일차. 열심히 걷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정말 코앞이다. |
|
택시를 타고 일찍 출발한 사람들도 보통 3일차에는 데우랄리(3300m)에서 쉬어가는데, 나는 버스를 타 안 그래도 늦은 주제에 무슨 오기가 있어 한 단계 더 올라갔다. 그게 바로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다. 해발 3700m. |
|
바위가 이렇게 깨질 수도 있구나. |
|
마차푸차레에서 안나푸르나 가는 길. 저 구간만 넘으면 드디어 도착이다. |
|
그리고 도착. 이 곳이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해발 4130m. |
|
환영해주는 안내판 |
|
이 깃발들은 행운을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
|
그래봤자 개가 물어뜯는다. |
|
차디찬 물에 열심히 빨래를 해 널어놓은 셔츠가...몇 분만에 얼어버렸다. |
|
이 추운 날 텐트를 치고 잔다던 리투아니아 여자. 발트인의 패기는 장난 아니다. |
|
일몰 무렵의 모습. |
저 왼쪽에 있는 건 달이다. 정확히는 보름달이다. 내 생에 보름달이 저렇게 밝고 큰 건 처음 봤다. 과장 조금 보태 형광등 쳐다보는 것보다 눈이 부실 정도이다.
그리고 산맥의 오른쪽은 약간 주황빛인데, 일몰빛이다.
그렇다. 사진 찍은 타이밍이 1분 늦어 그렇지, 1분 전에는 하늘 왼편에 보름달, 오른편에 석양이 동시에 존재하는 마법같은 모습이었다. 북유럽에서 온 한 남자는 저걸 보려고 산장에서 4일을 기다렸다고 한다. 현지인들도 평생 가야 한 번 보는 광경을 도착한 날 본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셈이었다.
|
달빛에 비친 모습이 저렇게 밝다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 |
|
다음날 일출때 |
안나푸르나에서의 일출을 감상하고는 부리나케 출발했다. 출발 시각은 약 오전 6시. 이 날은 온천이 있는 지누단다까지 가는 것이 목표였다. 보통 이틀에 가는 코스지만 나는 하루에 끊어보기로 했다.
|
이런 폭포도 있고 |
|
일정 고도에서는 이런 울창한 삼림도 있다. 저 어딘가에 원숭이가 숨어 있다. |
|
옥수수 말리는 과정 |
|
이 집에서는 화단을 참 정성스레 가꾸었다. |
|
풀을 뜯는 염소. 식용이다. |
|
바로 옆에 두 마리 더 있었다. |
|
드디어 온천이 있는 지누단다 도착. 보통 숙소(롯지)는 이렇게 생겼다. 난방? 당연히 없다. 패딩이나 입고 자야 한다. |
|
샤워실은 이렇다. 온수를 쓰려면 돈을 내야 한다.
가격은 150루피(약 2000원) |
|
구르카 용병으로 복무했을 때의 사진이다.
전설과 같은 구르카 군에 관해서는 엔하위키를 참고하자. |
|
드디어 온천 도착. 천연 온천이다. 바로 옆의 시냇물은 얼음장처럼 차갑지만, 네모난 탕 안만은 따뜻하다. |
|
원래 무료였던 온천은 얼마 전부터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 품질 관리를 위해서란다. |
|
소가 나에게 흥미를 보인다. 목욕을 하니 향기가 났나? |
|
다음날 도착한 간드룩 마을. 히말라야에서 꽤 큰 마을이다. 참고로 원주민들은 천 년전부터 산에서 살아왔다 한다. 이 사람들도 호랑이보다 탐관오리가 무서웠나? |
|
간드룩 마을에서 촬영한 일몰 |
|
여행을 떠나면서 챙겨온 전투식량. 롯지에서 주문한 신라면과 같이 섞어 먹었다. |
|
이리저리 튀어다니는 아기 염소는 바구니 안에 갇혀 있다. 우는 소리가 흡사 사람 아기와 같다. |
|
이틀간 걸어 다시 푼힐 전망대 도착. |
|
그리고 그 유명한 푼힐의 일출 |
|
하늘 한편에는 여전히 달이 떠 있다. |
푼힐에서도 일출을 보고 부리나게 출발했다. 하산까지는 보통 이틀 코스인데, 역시나 하루 안에 끊기로 했기 때문이다. 완전군장 행군도 했는데 이 정도야...
|
그리고 정말 하루만에 도착했다. 8일 전에 지나쳐온 출발점. |
|
굿바이, 안나푸르나 |
참고로 히말라야 산맥 전역에 있는 산장(롯지)들은 정부의 엄격한 통제 아래에 있다. 숙소별 음식 메뉴도 모두 정해져있고, 가격도 고도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고도가 높아질수록 가격도 올라가는건 당연지사. 메뉴판은 아래와 같다.
|
메뉴 뒷장에 있는 각종 경고 및 안내 사항. |
|
식사 메뉴 1. Rs 1 = 11원 정도이다. |
|
식사 메뉴 2 |
|
식사 메뉴 3 |
안나푸르나 산행 중에 만난 수많은 따뜻한 사람들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네팔 현지인들부터 스페인 사람, 홍콩 사람, 일본 사람, 말레이시아 사람, 태국 사람, 모두 다 좋았다.(김치찌개에 소주 마시고 만취해서 현지인 가이드에게 여흥을 돋구는 춤을 강요하던 한국인 회사원 아저씨들 빼고.)
나중에는 에베레스트도 한 번 가볼 생각이다. 언젠가는.
안나푸르나와 푼힐의 개략적인 위치는 다음과 같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