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신으로 섬기는 나라, 네팔에 드디어 왔다.
이 나라에서 첫 번째로 머무른 곳은 포카라. 히말라야 등반 전후로 도합 8일을 머물렀는데 이 정도면 내가 지냈던 외국 도시 중 보즈먼, 방콕 다음으로 가장 오래 머무른 곳이다. 물론 그만큼 좋았다.
포카라에서는 참 여러 가지 재밌는 액티비티들을 즐길 수 있다. 패러글라이딩, 동굴 탐험, 보트 타기, 폭포 구경, 설산 감상, 사원 탐방 등등...
단점이 있다면 포카라에서 난방과 온수를 찾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룻밤에 4~5천원 하는 숙소만 고집하는 나로서는 둘 다 갖춘 곳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때문에 밤에는 냉수 샤워 후 오들오들 떨면서 침낭 속에 기어들어가 잤고, 아침에는 겨울의 네팔 날씨에 오들오들 떨면서 침낭 속에서 한참 꼼지락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카라는 내가 세상에서 세 번째로 좋아하는 곳이다. (첫 번째는 베트남의 달랏, 두 번째는 태국의 방콕)
|
페와 호수. 이 날은 하늘이 굉장히 흐렸다. 곧 비가 올 것 같았지만 보트를 타고 호수 가운데의 섬으로 가보기로 했다. |
|
섬 안의 조그만 사원. 제일 왼쪽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나랑 동행해던 우크라이나 커플과 네덜란드 여성이다. |
|
사원 근처에서는 낚시와 술과 마약이 금지되어 있다. |
|
섬까지 타고 온 보트. 내 보트는 왼쪽에서 두 번째에 있다. |
|
섬 안의 기념품 가게와 나무들 |
|
나는 직접 노를 젓고 다니는데 돈 많은 중국인들은 역시 저런 보트를 빌려 편하게 다닌다. 약간 부러웠다. |
|
섬에서 나온 후 이번에는 세계 평화의 탑으로 향했다. 세계 평화의 탑은 영어로는 월드 피스 파고다라고 부른다. |
|
날이 맑으면 히말라야의 장엄한 전경이 보인다는데 오늘은 그런 거 없다. |
|
세계 평화의 탑의 불상 |
|
내가 이만큼을 30분만에 올라왔다니! |
하루는 자전거를 빌려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도 했다.
|
렌트한 자전거. 하루에 5천원으로 비싸다. |
|
네팔 음식인 뚝빠. 약간 칼국수 비슷한 느낌이다. |
|
시바 신의 남근상이 있다는 동굴 입구 |
|
동굴 내부. 남근상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
|
데비스 폴. 옛날에 데비라는 사람이 발을 헛디뎌 떨어져 죽었기에 그 뒤엔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
|
땅 속으로 푹 꺼지는 신기한 형태의 폭포이다. |
|
동전을 던져 물 위의 저 받침대 위에 맞추면 행운이 찾아온다고 한다. |
이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저 우물 안에 여자 두 명이 비쳐 있다. 한 명은 포카라, 한 명은 카트만두에 사는 네팔 여대생 두 명인데 금방 친해져서 밥도 먹고 같이 구경다녔다.
하루는 패러호킹도 했다. 패러호킹은 호크(매)와 함께 날아가는 패러글라이딩인데, 히말라야의 장엄한 경관과 함께 한다는 것에서 압도적이다. 패러글라이딩 매니아들은 이 곳에서의 비행을 세계 최고로 치기도 한다더라. 나는 단순한 패러글라이딩이 아닌, 매와 함께하는 비행이었기에 더욱 스릴 있었다.
|
패러호킹 전. 저 멀리에 히말라야가 보인다. |
|
패러호킹의 발명자, 영국인 교관이다. |
|
장비 착용 후. 왼손의 저 장갑에 매가 앉는다. |
|
바람을 기다리며 날개를 펴고, |
|
하나 둘 셋과 함께 절벽 아래로 뛰었다. 그리고 하늘을 날았다. |
|
이렇게 매와 함께 난다. 신기함에 입을 다물 줄 모르는 나. |
|
그리고 매가 기류를 파악하기 위해 저 멀리 날아가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매를 열심히 쫓아간다. |
고소공포증이 심한 나로서는(놀이공원에서 가장 무서워하는게 대관람차이다.) 생전 처음으로 하는 패러글라이딩이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적당한 맞바람을 기다리는 동안 계속 다리를 떨 정도였다. 오죽하면 교관이 나에게 떨지 말고 심호흡을 하라고 지시할 정도였으니...그래도 어쨌든 해냈다. 절벽을 향해 뛰면서 이대로 죽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절벽을 박차고 떠난 순간 낙하산이 제 역할을 해냈다.
숙소에 머물면서 주변의 세탁소 겸 수선소 겸 옷 가게 주인과 친해졌다. 자신의 형이 한국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구로 근처에서 일한다면 한 번 보러 갈까 했는데, 저 멀리 남쪽의 어디선가 일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만나는 건 불가능...네팔인 남성의 1/3이 해외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 각국 정부와 협정을 맺고 5년간 근무하는 것인데, 5년간 열심히 일하면 고향에 돌아와 집과 땅을 살 만큼의 돈을 모을 수 있다고 한다. 6,70년대 한국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떠올랐다. 네팔인들도 그들의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
그들이 쓰던 재봉틀 |
|
내가 놀러갈 때마다 앉았던 의자. 매우 튼튼하고 가볍다. 하나 사오고 싶었지만 가방에 넣을 자리가 없었다. |
포카라에는 한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꽤 많다. 인도에서 2주 반 동안 거의 굶다시피해 체력이 바닥이던 나는 거의 모든 한식당을 다 가보았다. 먹을거리 사진은 잘 찍지 않아 아래 사진 하나만 남아있다.
|
꽁치김치찌개. 얼큰한 맛과 푸짐한 밥이 일품이다. |
이 밖에도 많은 일들을 하며 돌아다녔지만 이걸 모두 여기에 적는 것은 불가능하니 포카라 편은 이쯤에서 마치려고 한다. 평화로운 호수와 인심 좋은 사람들, 맛있는 음식이 있는 포카라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 편에는 드디어 대망의 히말라야 등반 이야기가 나온다.
포카라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바로 위쪽의 초록색 구역이 안나푸르나 보전 구역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