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꼬창

태국 꼬창
태국 꼬창(2014)

2/04/2015

네팔 여행 1부 - 포카라

 산을 신으로 섬기는 나라, 네팔에 드디어 왔다.

 이 나라에서 첫 번째로 머무른 곳은 포카라. 히말라야 등반 전후로 도합 8일을 머물렀는데 이 정도면 내가 지냈던 외국 도시 중 보즈먼, 방콕 다음으로 가장 오래 머무른 곳이다. 물론 그만큼 좋았다.

 포카라에서는 참 여러 가지 재밌는 액티비티들을 즐길 수 있다. 패러글라이딩, 동굴 탐험, 보트 타기, 폭포 구경, 설산 감상, 사원 탐방 등등...

 단점이 있다면 포카라에서 난방과 온수를 찾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룻밤에 4~5천원 하는 숙소만 고집하는 나로서는 둘 다 갖춘 곳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때문에 밤에는 냉수 샤워 후 오들오들 떨면서 침낭 속에 기어들어가 잤고, 아침에는 겨울의 네팔 날씨에 오들오들 떨면서 침낭 속에서 한참 꼼지락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카라는 내가 세상에서 세 번째로 좋아하는 곳이다. (첫 번째는 베트남의 달랏, 두 번째는 태국의 방콕)






페와 호수. 이 날은 하늘이 굉장히 흐렸다.
곧 비가 올 것 같았지만 보트를 타고 호수 가운데의 섬으로 가보기로 했다.

섬 안의 조그만 사원.
제일 왼쪽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나랑 동행해던 우크라이나 커플과 네덜란드 여성이다.

사원 근처에서는 낚시와 술과 마약이 금지되어 있다.

섬까지 타고 온 보트. 내 보트는 왼쪽에서 두 번째에 있다.

섬 안의 기념품 가게와 나무들

나는 직접 노를 젓고 다니는데 돈 많은 중국인들은 역시 저런 보트를 빌려 편하게 다닌다.
약간 부러웠다.

섬에서 나온 후 이번에는 세계 평화의 탑으로 향했다.
세계 평화의 탑은 영어로는 월드 피스 파고다라고 부른다.

날이 맑으면 히말라야의 장엄한 전경이 보인다는데 오늘은 그런 거 없다.

세계 평화의 탑의 불상 

내가 이만큼을 30분만에 올라왔다니!






 하루는 자전거를 빌려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도 했다.

렌트한 자전거. 하루에 5천원으로 비싸다.

네팔 음식인 뚝빠. 약간 칼국수 비슷한 느낌이다.

시바 신의 남근상이 있다는 동굴 입구

동굴 내부. 남근상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데비스 폴.
옛날에 데비라는 사람이 발을 헛디뎌 떨어져 죽었기에 그 뒤엔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땅 속으로 푹 꺼지는 신기한 형태의 폭포이다.

동전을 던져 물 위의 저 받침대 위에 맞추면 행운이 찾아온다고 한다.


 이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저 우물 안에 여자 두 명이 비쳐 있다. 한 명은 포카라, 한 명은 카트만두에 사는 네팔 여대생 두 명인데 금방 친해져서 밥도 먹고 같이 구경다녔다.

 하루는 패러호킹도 했다. 패러호킹은 호크(매)와 함께 날아가는 패러글라이딩인데, 히말라야의 장엄한 경관과 함께 한다는 것에서 압도적이다. 패러글라이딩 매니아들은 이 곳에서의 비행을 세계 최고로 치기도 한다더라. 나는 단순한 패러글라이딩이 아닌, 매와 함께하는 비행이었기에 더욱 스릴 있었다.



패러호킹 전. 저 멀리에 히말라야가 보인다.

패러호킹의 발명자, 영국인 교관이다.

장비 착용 후. 왼손의 저 장갑에 매가 앉는다.

바람을 기다리며 날개를 펴고,
하나 둘 셋과 함께 절벽 아래로 뛰었다. 그리고 하늘을 날았다.

이렇게 매와 함께 난다. 신기함에 입을 다물 줄 모르는 나.

그리고 매가 기류를 파악하기 위해 저 멀리 날아가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매를 열심히 쫓아간다.



 고소공포증이 심한 나로서는(놀이공원에서 가장 무서워하는게 대관람차이다.) 생전 처음으로 하는 패러글라이딩이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적당한 맞바람을 기다리는 동안 계속 다리를 떨 정도였다. 오죽하면 교관이 나에게 떨지 말고 심호흡을 하라고 지시할 정도였으니...그래도 어쨌든 해냈다. 절벽을 향해 뛰면서 이대로 죽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절벽을 박차고 떠난 순간 낙하산이 제 역할을 해냈다.



 숙소에 머물면서 주변의 세탁소 겸 수선소 겸 옷 가게 주인과 친해졌다. 자신의 형이 한국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구로 근처에서 일한다면 한 번 보러 갈까 했는데, 저 멀리 남쪽의 어디선가 일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만나는 건 불가능...네팔인 남성의 1/3이 해외에서 일을 한다고 한다. 각국 정부와 협정을 맺고 5년간 근무하는 것인데, 5년간 열심히 일하면 고향에 돌아와 집과 땅을 살 만큼의 돈을 모을 수 있다고 한다. 6,70년대 한국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떠올랐다. 네팔인들도 그들의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이 쓰던 재봉틀

내가 놀러갈 때마다 앉았던 의자.
매우 튼튼하고 가볍다.
하나 사오고 싶었지만 가방에 넣을 자리가 없었다.



 포카라에는 한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꽤 많다. 인도에서 2주 반 동안 거의 굶다시피해 체력이 바닥이던 나는 거의 모든 한식당을 다 가보았다. 먹을거리 사진은 잘 찍지 않아 아래 사진 하나만 남아있다.


꽁치김치찌개. 얼큰한 맛과 푸짐한 밥이 일품이다.





 이 밖에도 많은 일들을 하며 돌아다녔지만 이걸 모두 여기에 적는 것은 불가능하니 포카라 편은 이쯤에서 마치려고 한다. 평화로운 호수와 인심 좋은 사람들, 맛있는 음식이 있는 포카라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 편에는 드디어 대망의 히말라야 등반 이야기가 나온다.




 포카라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바로 위쪽의 초록색 구역이 안나푸르나 보전 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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