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꼬창

태국 꼬창
태국 꼬창(2014)

8/05/2016

페이스북의 무료 인터넷!

몇 년 전부터 페북은 무슨 위성풍선 같은 걸 이용해서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았다. 바로 저개발국가에서 페북을 쓰면 인터넷을 무료로 제공해준다는 건데, 난 이게 그렇게 큰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면 한국에서 인터넷은 그냥 당연히 저기에 존재하는 거고, 페북은 그 수많은 플랫폼 중의 하나의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베트남에선 그게 아니었나 보다. 경제발전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현재 베트남의 경제성장률은 한국 고도성장기의 그것보다도 높다. 소득 수준도 중진국 문턱에 와 있는 정도.) 인터넷이 굉장히 빠르게 보급되었는데, 그게 얼마나 빨리 되었느냐 하면 유선인터넷을 접해보지도 않고 바로 WiFi가 보급되었을 정도. 유선인터넷이나 랜선의 개념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다들 WiFi에는 능통하다. 어떤 가게를 가도 WiFi는 기본 옵션이고,심지어 요새 휴양지로 뜨고 있는 다낭을 가면 도심 지역에 City Free WiFi가 깔려 있다.

그건 그렇고 오늘 또 충격을 받은게, 베트남에서는 아프리카TV 같은 개인 방송도 페북으로 한다. 베트남에서 이미 페북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동창회페이지, 중고판매페이지, 인터넷쇼핑몰, 구인구직까지 이 모든게 페북에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네이버나 다음, 싸이월드 같은게 만들어질 시간이 없었으니까...), 개인방송까지 페북으로 할 줄이야. 궁금해서 이것저것 클릭해봤는데 별풍선 기능이 없는 걸 빼고는 아프리카 TV에 비해 딱히 부족해보이는게 없다. 심지어 BJ도 핸드폰으로 방송을 하고, 시청자도 핸드폰으로 방송을 본다!

충격이다 충격... 페북은 진짜로 "Facebook=Internet" 이란 공식을 성공적으로 증명해보이고 있었다.

베트남 회고록 5부 - 동남아는 미개하다?

한국인들 중에 막연히 동남아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동남아애들은 다 게을러"(아침 7시에 대학수업 시작하는 베트남은?? 아침마다 불교사찰 가는 미얀마는??) "동남아는 다 못 살아"(한국 소득 2배에 달하는 싱가포르와 브루나이는?? 또 국민소득 1만달러 넘는 말레이시아는??)\

얼마 전에도 그런 사람을 한 명 만났다. 동남아는 미개하고 게으르다는 소리를 하면서 자꾸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하던데, 중간에 이런 말도 하더라. "저어기 태국 베트남 그런데가 다 같은 시간대 쓰는 거는 옛날에 프랑스 식민지였어서 그래." "베트남에 반미라고 바게트샌드위치가 있거든. 그거도 프랑스 식민지 영향이지." 그러길래 못 참고 반박을 했다.

"태국은 한번도 식민지화를 당한 적이 없는, 심지어 2차대전때 일본 동맹 추축국이었고요. 그리고 베트남이 태국 시간대 쓰는게 식민시대 유산이라면 한국도 옛날에 일본 식민지였어서 도쿄랑 같은 시간대 쓰는 건가요? 또 베트남 샌드위치가 맛있는 게 덕분이라면....아! 서울 4대문 내에 있는 일식집들도 일제의 유산인거겠죠?"

라고 했더니 버벅거리다가 겨우 하는 대답이 "아니 서울이랑 도쿄 간 거리는 태국이랑 베트남 사이 거리보다 가깝잖아..." 라고 하던데

지도 좀 보시죠. 전자가 후자의 2배는 됩니다만...

하여튼 한국인들은 옛날에 중국이 저개발 상태일때는 중국인들 게으르다, 냄새난다, 가난하다 하면서 욕하더니. 이제는 중국이 커지니까 중국한텐 깨갱대고 대신 동남아 가서 화풀이한다. 그 쪽 나라들이 역사적으로 보나 경제적으로 보나 인규규모로 보나 한국이 전혀 무시할 만한 대상이 아닌데 말이죠.

7/06/2016

대만 여행 후기

대만 여행 (2016년 5월)

7일의 시간 동안 대만을 북쪽에서부터 남쪽까지 골고루 훑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뻔한 관광코스는 제외하고 현지인 생활 공간 위주로. 그리고 그 후기.



1. 일본인

 대만에서도 일본인의 이미지나 평판은 굉장히 좋다. 대만 여행 초반에는 한국인인 척하고 다녔다가 (그러고 보니 나는 원래 한국인인가? 헷갈..) 타이중의 박물관 매표소에서 "니혼진데스까 칸코쿠진데스까"라는 매표원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니혼진데스" 라고 말한 다음부터는 그냥 일본인인척 하고 다녔다... 사실 이 편이 대만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 더 쉽다. 이쿠라데스까 하잇 도모아리가또! 정도는 다들 알아듣더라.



2. 오토바이

 대만에서 오토바이들은 좌회전시에 꼭 P턴을 하듯이 돌아줘야 한다. 정확한 표준 P턴은 아니고, 직진하는 척하다가 90도로 방향을 틀어서 왼쪽을 바라본 후에 잠깐 멈추고 난 후에 다시 출발해야 한다. 그렇다고 대만에서 오토바이가 딱히 천대받는건 아니고 어딜 가나 오토바이 주차장이나 대여샵 등이 있을 정도로 보편화된 수단인데 도대체 이런 시간과 에너지를 잡아먹는 요상한 P턴을 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3. 쓰레기

 대만의 길거리에선 두 가지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쓰레기와 쓰레기통. 쓰레기통을 찾기가 쉽지가 않음에도 불구하고 쓰레기를 길가에 버리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다들 가방 안에 쓰레기주머니를 만들어서 다니나 싶을 정도다.

 또 집안쓰레기를 버릴때마저도 깔끔함을 보여주는데, 다들 집안에 재활용통을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가 동네에 쓰레기차가 와서 띠리리링 사이렌을 울리면 다들 착하게 몰려가서 얌전히 쓰레기를 건네준다.



4. 정숙함

 대만 사람들은 정말 조용하다. 서울역만큼 큰 타이페이기차역을 몇 번 들렀었는데, 갈 때마다 그 큰 홀의 무서우리만치 조용함에 섬찟할 정도였다. (대만도 표준중국어를 쓰니 중국어가 성조 있는 언어라 시끄럽다는 논리는 여기서는 설 곳이 없다.) 한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살짝 귀기울여보면 백프로 한국인 아니면 본토중국인이다.

 대만의 관광객은 본토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순으로 많다는데 솔직히...한국인만 눈에 엄청 뜨인다. 본토중국인은 어차피 같은 중국어를 쓰니 잘 섞여들어가고, 일본인은 벙어리인가 싶을 만큼 조용한데, 한국인들은 거침없이 한국어로 떠들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만을 갔다왔던 한국인들은 "야 대만 관광객 절반이 한국인이야!!" 그러는데 흠 글쎄요...대만인 친구에게 부탁해 받은 공식 통계를 한 번 살펴보았더니, 작년에 대만을 방문한 본토중국인은 420만명, 일본인과 홍콩인이 각각 160만명이었고 한국인은 고작 65만명이었다. 심지어 동남아시아 국적 관광객도 150만명이었다. (물론 거긴 인구가 6억이지만) 어쨌든 결론은 한국관광객은 전체의 10퍼센트도 안된다는거...한국인이 많아보이는건 아마도 시끄러워서일거라는거...



5. 음식

 대만의 먹거리는 소문대로 가히 최고였다. 맛이면 맛, 멋이면 멋, 거기에 청결함과 적당히 착한 가격은 두말하면 잔소리. 외국인이면 한두번쯤 바가지를 쓸 법도 한데 단 한 번도 그런 일을 겪은 적은 없었다. 오히려 손님을 은근히 배려하는 자세를 보여줄 뿐. 일본만큼 과도한 친절은 없었지만 손님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친절을 베푸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 좋았다.



6. 총평

 별로 기대치 않았던 대만 관광은 굉장히 만족스러웠고,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재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사실 볼 것은 별로 없지만 현지 사람과 음식이 너무나 좋았다.) 한국도 이런 점에선 대만을 본받아야한다. 한국 관광객 중 절대다수가 중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짱깨짱깨 그러면서 무시하질 않나 바가지를 된통 씌우질 않나...(아무리 짱깨짱깨 그래도 최소한 내가 지금까지 중화권을 네 번 여행하면서 만났던 짱깨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었다!) 한국을 한번 왔다간 관광객들의 재방문 비율이 일본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데, 나라가 좁다고 조상 탓하기 전에 우리들의 태도를 먼저 돌아볼 일이다.

 대만이 최근 몇 년간 중국발 악재에 시달리게 되어 현재 GDP는 한국보다 낮을지 모르지만 국민의식은 확실히 한 수 위로 보였다. 선진국을 선진국으로 만드는건 그런 수준높은 민도가 아닐까. 누가 그랬던가? 헬조선을 만드는 건 한국인 본인들이라고.


쉐프들의 자신감이 엿보이는 음식적 벽면광고

비오는 날 멀리서 찍은 타이베이101 빌딩

중국의 국부라 불리는 쑨원의 동상

시내 한복판에서 중국 정부에 대항하는 시위를 벌이는 파룬궁 수련자들

장제스 기념관. 실제로 보면 더 거대하고 웅장하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기차역의 초밥 체인.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찍은 풍경

가오슝의 항구에서 찍은 사진

타이중에서 렌트했던 스쿠터와 함께. 햇살은 더웠지만 바람이 너무도 시원했다.

야시장의 흔한 모습. 대만 야시장 먹거리는 정말 맛있다!

5/19/2016

베트남 회고록 4부-반한감정

약 2년 전에 네팔의 히말라야를 올랐던 적이 있다. "요새 젊은 것들은 패기가 없어!" 라는 어르신들의 말에 반발심도 있었던지라 혼자 오르기로 결심했었는데(하지만 결국 가이드와 동행) 나는 그 곳에서 한국 어르신들의 어마어마한 패기를 목도하고 말았다. 취사와 쓰레기 투척이 금지된 해발 3천미터에서 라면과 김치찌개를 끓여먹고 막걸리를 마신 뒤에 취해서 네팔인 가이드에게 "야 이 놈아 춤춰봐!"라고 소리를 지르는 대단한 분들이 계셨던 거다.

거기다가 그 요리를 굳이 해먹겠다고 버너, 밥솥, 반찬, 쌀 등을 챙겨가 짐꾼 한 명당 80kg의 짐을 들고 오르게 하면서도 자신들은 스스로 마실 물 하나 들지 않고, 각종 등산모자 등산복 등산화 스틱 아이젠 등으로 무장한 상태였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 짐꾼들은 80kg의 짐을 지고 다니면서도 제대로 월급을 받지 못해 허름한 셔츠에 쪼리를 신고 해발 4,5 천미터를 오르고 있었는데 그런 대단한 일을 시키는 것이 패기라면 나름의 패기렸다. 사진 1에 보면 "한국 막걸리 팝니다. 환영합니다."라고 나와있는데 이게 진짜 환영의 의미일리도 없고, 오히려 사진2의 "No 아이젠 please"가 네팔의 자연과 현지인들을 마구 대하는 한국인들의 이미지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겠다. 거기다가 한국내 네팔인 노동자들이 학대받는 문제도 있어서 네팔 내에 반한감정이 꽤 존재하는 편인데, 과연 베트남은 어떨까?

베트남에 한 번 와본 한국 여행자들은 이 곳이 가히 천국이라고 말한다. 한국이라면 다들 좋아하고, 물가가 싼데다 놀거리가 풍부하다고. 나도 처음엔 마냥 베트남이 좋았다. 그런데 그건 지극히 여행자의 단편적인 입장일 뿐이고, 정작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많은 게 다르게 보인다.

먼저 베트남 내 한류를 얘기해보자. 베트남 내 한국 노래와 드라마가 많이 퍼져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이미지가 좋은 건 아니다. 일본의 만화와 av가 한국에 많이 퍼져있다고 해서 많은 한국인들이 친일을 하는 것은 아니듯이,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좀 좋아한다고 해서 베트남인들이 친한인 것은 아니다. 심지어 최근에 '태양의 후예'라는 군대 드라마가 베트남에 수입되면서 베트남 내 논란이 일어났는데, 주 요지는 "베트남전 때 민간인들을 학살,강간한 한국군 미화 드라마에 반대한다."이다.

베트남 중부에 가면 한국군 증오비라던가 공동묘지에서 추모를 올리는 모습을 꽤 볼 수 있다. 심지어 어떤 마을에서는 전후 4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어느날 한국군이 와서 우리를 구덩이에 몰아넣어 쏴죽이고 마을에 불을 질렀다.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아가야"라고 자장가까지 부른다고 카더라. 그런데 한국에서는 월남전 용사님들께서 자신들의 행위를 미화하기에 바쁘다. (베트콩을 몇 명 죽였다고 자랑하기도 하던데 그 베트콩은 당시 베트남의 독립군이었다.)

한-베 역사는 일-한 역사와 거의 비슷하다. 일제시대에 일본군이 한국에 와 독립군을 죽이고 여자들을 위안부로 데려갔듯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은 베트남에서 베트남공산군(다시 말하지만 분명 독립군이다! 뇌리에서 공산당 나쁜놈들 배트콩 빨갱이들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면 한국식 세뇌 교육을 탓할 필요가 있다.)을 죽이고 여자들을 강간해 수많은 라이따이한이 양산되었다. 왜 이 사실이 한국 역사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지는 뻔하다. 한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 민족이거든요... (그런데 교과서에서 고구려는 말갈인들을 복속시키고 고구려인들이 지배층으로 있었던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기술하는데, 말갈인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역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입장에서 쓰기 때문에 이에 대해 더 이상 태클을 걸 마음은 없다. 다시 오늘날의 문제로 돌아와보자. 나는 내 오토바이가 있어서 택시를 거의 안 타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탈 일이 있다. 타고 가는 동안 택시기사하고 베트남어로 얘기하다보면 으레 나오는 질문이 있다. "한국 아저씨들은 왜 그렇게 베트남 아가씨를 좋아하냐? 가라오케에 가서 술은 왜 그렇게 많이 마시나?" 정말로, 수 십번 들은 질문이지만 아직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적나라하고 쪽팔린 극사실적 질문이다.

베트남 젊은 친구들을 만나도 술 좀 들어가면 꼭 받는 질문이 "왜 한국인들은 베트남에 와서 베트남인을 무시하고 깔보나? 왜 베트남이 가난하다고 무시하는가?"이다. 정말로 웃긴게, 베트남에 와서 자신이 뭐라도 된듯이 착각하는 한국 여행자들이 꽤 있다. 예전에 갔던 라이브 클럽에서는 술에 취한 아저씨 여행자 두 명이 스테이지에 뛰어올라 똥배를 튀기며 "아이엠 코리안!"이라고 자랑스럽게 외치는 경우도 있었는데(그러면 베트남 여자들이 알아서 달려올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 뒤 일은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 어깨들에게 끌려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도 난생 처음 클럽에 와서 너무 신나 그런게 아닐까 하고 추측을 해본다. 이전에 클럽을 가본 적이 있다면 그런 식으로 여자를 만날 수 없다는 건 너무나 자명한데, 아니면 베트남이라고 쉽게 보았나?

몇 년 전에 부산에서 베트남 새댁이 정신병자 남편에게 맞아 죽었을 때는 베트남 내 여론이 정말 안 좋아져 교민들이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를 극복하기 위해 교민들은 자발적으로 헌혈 운동에 나서 자신들의 피를 베트남에 바치고 나서야 극적으로 화해가 이루어졌다고 하던데...

모든 한국인이 나쁜 것도 아니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원천적인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닐진대 이런 오해가 억울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인접하면서도 파워 차이가 나는 나라들끼리는 으레 오만과 편견의 관계가 성립되기 마련이다. 중국-한국, 인도-네팔, 일본-한국, 한국-베트남의 관계를 두고 보면 전자는 항상 후자를 오만하게 깔보고, 후자는 전자를 편견이 가득찬 시선으로 쳐다보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만연한 베트남에 대한 오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베트남 회고록 3부-소유와 존재, 그리고 꼴갑

헬조선 열풍이 불면서 이민 바람이 불고 있다. 나는 한국인이 외국으로 이민을 가려면 반드시 적용해봐야할 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살기 좋다'는 그 나라가 과연 내국인이 살기 좋은 것인지, 외국인이 살기 좋은 것인지. 일반적인 한국인들은 인구 다양성이 적고 폐쇄적인 북유럽 같은 곳에 가서 낯선 아시아 인종으로 살아갈 자신이 과연 있는지? 캐나다, 미국, 호주라고 별반 다를까? 아니다. 그 곳에서도 한인들은 한인들끼리 수다를 떨고 한국 신문을 보고 한국 드라마를 본다. 그렇다면 외국인으로 살기 좋은 나라는 어디가 있을까? 요새 여행으로 한창 뜨는 동남아-베트남, 태국 이런 나라? 한 번 생각해볼만한 문제이다.

예전에 인도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인도 여행에서 꼭 빠지지 않는 장소가 있는데, 바로 갠지스 강가이다. 한쪽에서는 시체를 화장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개들이 새끼를 낳아 기르는, 또한 밤에는 기이한 축제가 열리는 전설의 장소가 갠지스 강가다. 남들 다 간다는 이 장소에서 나도 며칠 동안 앉아서 인간(또는 시체) 군상을 바라보며 생각을 좀 해봤는데, 아무리 봐도 죽음이라는게 허무했다. 크샤트리아 계급이든 수드라 계급이든 똑같이 불타 없어지는걸 보면서 공수래공수거를 제대로 느꼈달까.

에리히 프롬의 역작 [소유와 존재]를 보면 소유적 실존양식을 배제하고 존재적 충만감을 느끼기 위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식이 기술되어 있다. 요약하자면 대략 '자기를 새롭게 하는것, 자기를 성장시키고 흐르게 하며 사랑하는 것. 운명이 우리에게 허용하는 아득한 목표지점이 어디에 있든 간에 끊임없이 성장하는 생명의 과정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실존적 인간의 올바른 행동양식이다.

얼마나 멋있는가. 무소유 사상과도 통하는 개념인데, 실제로 무소유로 세상을 살아가면 무서울 것이 없다. 가진 게 없으니 뺏길 게 없어 두려울 게 없고, 생명조차도 자신에게 일시적으로 주어진 것임을 자각하면 삶에 대한 집착이 사라진다.

나는 호치민에 혼자 살면서 그 존재적 삶의 방식을 영유하려고 해봤다. 내가 좋아하는 베트남어를 배우고, 영화와 뮤지컬을 보고, 발리우드 댄스를 배우며, 베트남 친구들을 만나 같이 배낭여행을 다니며 충분히 삶을 즐겼더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불편한 진실을 깨달았다. 나는 소득과 물가의 차이를 이용해 건물주 아들급의 부유한 백수 생활을 하고 있던 것뿐이었다. 나는 '소유'가 아니라 '소위 꼴갑'을 떨고 있었던 거였다.

베트남에서 영화 한 편이 3천원이라지만, 영화관 알바생 시급은 700원이다. 발리우드 댄스 강습은 시간당 4천원이지만 댄스 홀을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월급은 15만원이다. 기름값은 리터당 700원이지만 택시기사의 월급은 월 30만원 언저리이다. 베트남의 물가가 한국인이 느끼기에 싸다고 해서 그 업에 종사하는 베트남인에게도 똑같이 싼 것은 아니었던 거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서민의 삶은 고달프고, 부유층은 여유롭게 살아간다"

다시 첫 문단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돈 많은 한국인이 부유층으로 행세할 수 있는 베트남은 과연 천국일까? 베트남에 사는 한국 교민은 대략 15만명이다. 과연 이 15만명이 모두 행복하게 살아가냐면...글쎄. 베트남에서도 한국인들의 이미지가 급격하게 하락하는 중이다. 십 년 전 필리핀의 모습이 재현된달까. '마싸랍 코리안!'처럼.

베트남 내 거의 모든 지역을 다녀보고 단 하나의 절대 법칙을 발견했다. "한국인 접촉도와 호감은 반비례한다." 한국인을 많이 접해본 지역일수록 한국인에 대해 반감을 더 크게 가진다는 뜻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 답은 의외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4/01/2016

베트남 회고록 2편-헬조선


며칠 전에 오세훈 씨께서 "헬조선? 개도국에 한 달 살면 한국에 자부심 생겨"라고 하셨다. 총명하신 분께서 괜히 그런 말씀을 하신 건 아닐 테고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을 테지 싶어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무슨 자격으로? 개도국만 10여 개국 배낭여행을 다녀봤고, 지금도 개도국에 7개월째 살고 있으니 저도 좀 할 말이 있지 말입니다.

베트남에 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이 나라에 희망이 넘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 중에 자국의 미래를 비관히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이 고도성장기 (1960-2000)에 연평균 5.9%의 경제성장을 이뤘다지만 베트남은 개혁개방정책 이후로 30년째 6% 이상의 더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그걸 반영했는지 젊은이들의 씀씀이도 거침이 없다. 

세 달 월급을 모아 아이폰 신상을 일시불로 사버리고, 일년치 월급을 아껴놓았다가 야마하 오토바이 신형도 바로 질러버린다. 이렇세 돈을 많이 쓰는 것에 대해 궁금증을 못 참고 물어본 적도 있지만 그들의 대답은 "괜찮아. 내년엔 월급이 더 높아질 거거든"이었다. 실제 베트남의 최저임금 연평균 상승률은 12-15% 에 달한다. 한국으로 치면 편의점 시급이 매년 천원씩 올라가는 셈이다.

개도국의 미래는 이렇게 밝다. 아니, 미래가 밝으니까 개도국 아닐까? 빚을 내서 아파트를 사면 매매가가 하늘도 뚫을 기세로 오르는, 그런 낙관적인 상황이 이 나라를 점령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도국에 살면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다'는 얘기가 미래 관점에서 본 건 아닌거 같고, 과연 그럼 현재 관점은 어떨까?

좀 속물적으로 보자면, 장담컨대 베트남에 살고 있는 한국 청년들은 누릴 거 다 누리면서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 물론 물가 차이에서 비롯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쌀국수 한 그릇이 1500원이고 맥주 한 캔이 500원이고 택시 기본 요금이 300원으로 시작하는 곳에서 한국 청년들이 불행을 느끼기란 어쨌든 쉽지 않다. 

이 곳 베트남은 아니고 조금 먼 나라, 인도 이야기기는 하지만 그 곳에 가면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일본 청년들이 많다. 반 년은 일본에서 편의점 알바를 해 돈을 모으고, 반 년은 인도에서 풍족하게 누리는 생활을 몇 년째 하는 거다. 그렇게 살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는 이상, 인생을 그리 즐기지 못하란 법이 없지 않은가? 80년대 엄청난 부동산 버블로 인해 자국 내에 집 살 생각을 버린 일본 청년들은 그렇게도 살아가는데, 한국의 청년들이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베트남에 산 지 7개월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는 한국에 자부심이 들지 않는다. 

아! 지금 나는 여기서 일자리를 찾고 있지만 한국 기업은 최악의 근무조건을 자랑한다. 항상 반복되는 야근과 회식은 그들의 일상이다. 한국인들의 일에 대한 열성은 베트남 내에서도 소문이 자자한데, 어학당 선생님들마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이다. 어떻게 아냐고? 왜냐먄 회사원 아저씨들이 야간 코스를 등록해놓고 수업 때마다 야근과 회식이 있다며 결석 통보를 하기 때문에...

아무튼 그렇게 어학당 선생님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때면 주변의 외국 친구들은 나를 돌아보고,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그러고보니 이런게 바로 자부심을 느끼는 포인트구나!

3/31/2016

베트남회고록 1부-그간의 베트남 생활을 정리하며...


베트남을 드나든지 어느덧 2년이 되어가고, 베트남 출입국 도장과 비자로 여권이 도배되어 가는 상태에서 그간의 베트남 생활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보는 이에 따라서 불편할 수 있으니, 얼마든지 넘기셔도 됩니다^^


내가 베트남에 처음 왔던 것은 2년 전이었다. 당시 나는 홀로 백 일간의 남아시아 일주중이었는데 베트남 방문 직전까지만 해도 베트남에 대해 정말 몰랐다. 단지 아는 거라곤 베트남 국제결혼과 쌀국수뿐이었고, 그마저도 편견에 가득 찬 상태였다. 솔직히 고백컨대  당시 내게 베트남 여행이 갖는 의미는 '상상 이상으로 위험할 나라인 인도를 가기 전에 적응겸 들르는, 역시 소매치기가 많은 나라'뿐이었다.

그러나 북쪽의 하노이부터 호치민까지 여행하며 그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원래는 7일만에 찍고 옆나라 캄보디아로 튀어나갈 생각이었는데, 정확히 이틀째부터 베트남에 대한 사랑에 빠져들면서 출국을 계속 미루어댔다. 신기한 건, 누군가 내게 "왜 베트남이 좋아졌냐?" 고 물으면 아직까지도 그 대답을 확실하게 할 수가 없다. 음식(고수, 향채, 염소고기, 개구리고기를 모두 아울러서), 문화(유교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사람들(보고 있으면 자꾸 정이 드는), 경제 발전까지 모든 게 다 좋았다. 돌아가서, 결국 그 때 난 무비자 입국기간인 15일을 다 채우고서야 아쉬운 마음에 못내 종지부를 찍고 이 나라를 떠나게 되었었다.



그렇게 베트남을 떠나고 다음으로 캄보디아, 태국, 인도, 네팔까지도 갔었는데, 베트남에 대한 추억이 계속 아련히 남았다. 심지어 히말라야 산맥에 올라 밤중에 별을 보면서도(해발 4천 미터에서 보는 밤하늘은 가히 환상적이다! 구름들은 내 발 밑에 있고, 별 속을 헤엄치는 듯한,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이다) 베트남 친구들과 쌀국수를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결국 남아시아 일주는 어쨌든 끝났고 나는 귀국, 복학했는데 베트남에 대한 기억을 도저히 지울 수 없었다. 밥을 먹을 때면 고수향이 고팠고, 술을 마실 때면 사이공비어가 그리웠다. 6성조를 자랑하는, 마치 노래와도 같이 아름다운 베트남어가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이 때 베트남에 대한 책과 신문기사도 정말 많이 읽었었고 베트남 유학생들도 많이 만났었다. 그렇게까지 해도 너무 아쉬웠던 나머지 나는 이후 대학교 방학이 될 때마다 베트남을 방문했고, 총 3회 방문 40일간의 여행 기록을 자랑하게 되었다.(40일을 다녀도 여전히 새로운 볼 거리, 놀 거리, 먹을 거리는 넘쳐난다.)




 시간은 계속 흘러 이윽고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었는데, 나는 여전히 베트남에 대한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벗어나려는 시도도 안 해봤다. 남들이 베트남을 더럽다, 오토바이 시끄럽다고 욕할 때 나는 그 더러움마저 정겨웠고, 오토바이야 뭐...내가 원래 타던 거니까^^ 결국 졸업 후에 나는 취업 자소서조차 한 번 쓰지 않고 바로 베트남행을 택했다. 그게 바로 7개월 전에 청년 사업가 프로그램을 활용해 하노이에 온 계기였다.

(계속)










3/07/2016

미얀마를 여행하며

미얀마를 여행하며 스쳐지나가는 생각을 적어볼까 한다.

캄보디아와 미얀마에서는 유독 달러를 많이 쓴다. 과거 내전(또는 국내 대립)의 영향으로 자국 화폐가 평가절하당했기 때문일 터인데, 흥미롭게도 달러를 취급하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 캄보디아에서는 왠만큼 더럽거나 구겨진 10달러짜리도 잘 받아주는 한편, 미얀마는 고액권 100달러짜리가 아니면 환율을 낮게 쳐줄 뿐더러, 100달러짜리를 낸다 하더라도 접힌 자국 하나까지도 돋보기를 들이대고 꼼꼼하게 찾아내 환율을 깎아버린다.

반면 자국 화폐 사용에 있어서 미얀마와 인도의 차이도 흥미롭다. 미얀마는 달러에는 매우 엄격한 대신 자국 화폐 쨧에는 매우 너그러워서 메모지로 쓰거나 더러운 걸 닦는데 쓰기도 하는데, 인도에서는 자국 루피에 왠만한 흠이 있으면 위조지폐로 의심하고 거부해버린다.(그럴 수밖에 없는게 인도에서는 atm에서 위폐가 나오기도 한다!!)

이처럼 생각해보면 화폐는 결국 인위적인 가치 결정에 따른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람들이 그걸 돈으로 쳐주면 돈인 거고, 돈으로 안 쳐주면 돈이 아닌 거다. 캄보디아에서 쓰이는 꼬질꼬질한 달러가 미얀마에 가면 휴지 조각이 되듯이. 그렇기 때문에 돈은 결코 인간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고, 수단으로서만 작동해야 하는데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강신주의 [감정 수업]이라는 책에 보면 대강 이런 말이 나온다. "진정 행복해지려면 돈을 쫓으면 안 된다. 자신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 임금을 계산하고, 그 만큼을 벌고 나면 나머지는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자본주의를 배격한 저자조차도 어느 방송에선가 '스스로도 돈 욕심을 버릴 수 없음'을 고백했으니 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역시 나만 해도 그 화폐 조각(미국 연준이 발행한, 이젠 더 이상 금과 바꿔주지도 않는)들을 들고 미얀마에 와서 편하게 여행하고 있으니 뭐라 할 처지는 못 된다.

2/20/2016

베트남은 빠르게 변화한다.

 한국처럼 설을 쇠는 베트남. 설을 기해 내가 사는 동네의 음식값이 꽤 올랐다. 작년까지만 해도 30000동이었던 쌀국수가 35000동이 되고, 35000동이었던 갈비밥은 40000동이 되었다. 상승률로 따지면 15%정도이고, 한국 돈으로 하면 이제 200원 정도가 올라 2000원이 된 셈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분명 싼 가격이지만, 베트남의 물가 기준으로 생각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지금껏 식비로 하루에 5000원을 썼는데, 이제부턴 6000원을 써야 한다. 한 달에 3만원씩이 더 들어가는 셈이다.

*베트남의 물가는 날이 다르게 급상승 중이라, 일부 식당이나 카페를 가면 메뉴판에 가격이 안 써있거나 보드마카로 그 달의 가격을 휘갈겨놓은 경우도 있다.

 우리가 "외국은 살기 좋다"라고 말할 때 "살기 좋다"라는 말에는 두 가지 상반된 경우가 있다. '내국인으로서 그 나라에 살기 좋다' 또는 '외국인으로서 그 나라에 살기 좋다' 이렇게 두 가지이다. 북유럽 국가는 전자에 해당하고, 개도국 중 발전중인 나라(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은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면 쉽다. 한국인이 스웨덴에 이민을 가려고 할 경우에는 배관수리공 같은 3D직업을 택하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인도네시아에 가서 배관수리공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는 소득과 물가의 국가별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한국에서 열심히 일해 저축한 2억원을 스웨덴에 들고 가봤자, 몇 년 생활비로 다 써버릴 게 뻔해 당장 노동력을 바치고 먹고 살 거리를 마련해야 하지만, 베트남에 2억을 들고 오면 최소한 대형 식당 하나는 번듯하게 차릴 수 있다. 물론 2억을 들고 와 베트남에 식당을 차렸다가 현지 법, 문화, 언어를 몰라 쫄딱 망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다만 어디까지나 2억의 자금력으로 가능하긴 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베트남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주재원들의 생활을 한 번 볼까. 십 년 전에 주재원들은 호화로운 궁전식 아파트에서 가정부를 두세 명, 운전기사를 한 명씩 부리며 왕처럼 살았다. 그다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사실이 그랬다. 십 년 전에는 가정부 한 명의 월급이 50달러도 안 했을 때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운전기사? 사장이나 법인장들은 한 명씩 데리고 다니지만 과장급 이하로는 꿈도 꾸기 힘들다. 전속 가정부? 요새는 한국인들이 소형 주택에 모여 살며 한 명의 청소원이 여러 집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인건비가 빠르게 올라온 것이다.

 그리고 역시 물가도 빨리 치고 오른다. 첫 문단에서 말한 식비. 십 년 전엔 500원으로 쌀국수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은 500원으로 생수 한 통이나 겨우 사먹는다. 이십 년 전엔 대학생 하숙거리의 방값이 한 달에 만 원이었다. 외국인들이 많아진 지금은 적당한 방 하나에 삼십만원까지 가는 곳도 있다. 베트남의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물가는 더욱 빨리 올라갈 것이다. 베트남인들의 월급도 같이 올라갈 것이다.

 어느 순간이 되면 베트남의 경제는 더 이상 '외국인이 살기 좋은' 수준이 아닐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대부분의 베트남인들이 자가용을 한 대씩 보유할 것이다. 시내의 고급 음식점과 바는 베트남 중산층으로 가득찰 것이다. 아리따운 베트남의 여성들이 술집과 마사지샵에서 외국남자들을 환영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지금 길거리에 나가면 아름다운 베트남 여성들과 거리를 활보하는 외국인 남성들이 한보따리다. 그 때문에 베트남 남성들의 불만이 꽤 크다. 호치민시티에 와서 가라오케와 여자 없이는 못 사는 한국 아저씨들 덕분에 호치민의 베트남 남성 중 한국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택시만 타면 택시기사가 "너도 베트남 여자 좋아하냐?"라고 물어볼 정도다. 한류? 적어도 호치민시티에서는 한류를 찾아볼 수 없다. 간간히 한국 드라마와 노래를 아직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한국에서 스페인어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비율하고 비슷할 것이다.

 베트남의 경제는 나날로 발전한다. 한국이 고속발전을 했다는 1960~2000년 사이의 한국의 경제성장률 평균은 연 5.9%였다. 베트남이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한 1986년 이래로 베트남의 경제성장률은 한 번도 6%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지금의 베트남은 한국의 90년대 수준에 와있지만, 앞으로 20년이면 베트남은 한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 비교로만 봐도 베트남의 인구는 1억으로 남한의 두 배이다. 베트남의 남북 길이는 2500km로 서울-부산의 5배에 달한다. 게다가 베트남은 인구 평균 연령, 쌀 수출량, 커피 수출량, 광물 매장량에서 모두 세계 탑 순위권에 들어간다. 심지어 앞바다에서 석유도 펑펑 난다.

 한 가지 슬픈 점은 그 때가 되면 베트남은 외국인이 살기에 더 이상 적합한 나라가 아닐 거라는 점이다.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남아있는 셈이다. 완벽한 베트남인으로 변모하든가, 적당히 즐기는 외국인으로 살다 쫓겨나든가.

2/17/2016

베트남과 한국의 시각 차에 대하여

 동일한 현상을 두고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나라 같은 도시에 사는 사람끼리도 그러할진대, 서로 다른 나라 사람끼리는 어지간할까? 한 예로 동해-일본해 표기가 있겠다.

 동해-일본해 표기를 하니까 생각나는 건데, 베트남에도 동해가 있다. 그건 바로 남중국해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중국의 남해는 분명 베트남의 동해다. 그러니 베트남에서는 이걸 동해라 부르는 것이 당연한 셈이다. 이건 중국과 베트남 사이의 입장 차이이고,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도 이런 일이 꽤 있다.

 예를 들면 월남전. 한국에서는 베트남 통일전쟁을 월남전이라 부르지만, 정작 월남(베트남)에서는 그걸 미국전쟁이라고 부른다. 조국의 통일을 훼방놓던 미국군을 몰아낸 전쟁이니 당연히 미국전쟁이란 것. 수긍이 가는 설명이다. 같은 관점에서 미국군을 도왔던 한국군은 베트남에 전혀 보탬이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한국국은 나름대로 자유 월남을 돕는다고 참전했겠지만(뭐 돈 문제도 있었을 거고), 전후 통일 베트남이 볼 때 이거는 베트남의 통일 전쟁을 방해했던 귀찮은 외국군이었을 뿐이다. 어쨌든 역사는 승자의 것이 아니던가?

 이런 식의 입장 차는 다른 사안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아오자이를 예로 들어보자. 베트남에 여행을 한 번이라도 와봤다면 반드시 봤을 아오자이. 많은 외국인들이 이 옷에 가히 환장한다. 너무나 섹시하다나. 그런데 과거에 베트남 정부가 이 아오자이에 금지령을 내렸던 적이 있었다. 그 때 금지령의 요지는 "착용이 불편해 노동에 지장을 초래한다." 였지만 신기하게도 이게 한국인들 사이에는 '아오자이가 너무 퇴폐적이라 금지되었다'는 이상한 소문으로 퍼져나갔다. 아오자이가 분명 섹시한 옷이기는 하지만 베트남 정부가 과연 그런 이유로 금지를 시켰을까?

 다음으로 달랏 여자들. 호치민시 근처(라고 해도 버스로 7시간 걸린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2500km에 달하는 긴 나라이다. 종단 기차가 이틀이 넘게 걸린다.) 에 달랏이라는 해발 1500m 고원 지대가 있는데, 프랑스 식민 시대에 프랑스인들이 휴양지로 개발하면서 준대형급 관광 도시로 성장했다. 이 곳 달랏은 여러 특산물로 유명한데, 달랏 여자들도 이쁘기로 소문이 나 있다. 특히 달랏 여자들은 피부가 너무나 하얗다는 것.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달랏 여자들의 피부가 하얀 이유에 대해 베트남인과 한국인들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는 거다. 베트남인들은 "달랏은 고원지대라 날씨가 시원하고 사계절이 분명해 피부가 잘 타지 않아 하얗다."고 하지만 한국인들은 "과거 프랑스인들이 달랏에서 오래 살다가 혼혈이 많이 생겨서 여자들이 하얗고 이쁘다."는 주장을 한다. 이 주장은 좀 부끄럽지 않은가?

 자매급으로 황당한 소문이 또 있다.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였다 보니 프랑스에서 제빵 기술을 들여와서 banh mi라는 바게트빵을 잘 만든다."라고 주장하는 한국인들이 있는데, 그러면 서울 시내 유명한 일식당은 일제 식민 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승된 것인가? 어떤 영국인이 서울에 와서 스시를 먹어보고는 "오 역시 한국은 일본 식민지 영향을 받아 스시가 맛잇군요!" 하면 한국인들이 참도 좋아하겠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지배했던 기간과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던 기간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나면 베트남이 프랑스 영향을 받아 빵을 잘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주장인지는 뻔하다.

 물론  베트남이 항상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한국인이 옳을 수도 있고,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베트남인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를 분석할 때는 균형잡힌 시각이 항상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쪽에 치우쳐 제 멋대로 쉬운 해석을 내려서는 곤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