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꼬창

태국 꼬창
태국 꼬창(2014)

5/19/2016

베트남 회고록 3부-소유와 존재, 그리고 꼴갑

헬조선 열풍이 불면서 이민 바람이 불고 있다. 나는 한국인이 외국으로 이민을 가려면 반드시 적용해봐야할 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살기 좋다'는 그 나라가 과연 내국인이 살기 좋은 것인지, 외국인이 살기 좋은 것인지. 일반적인 한국인들은 인구 다양성이 적고 폐쇄적인 북유럽 같은 곳에 가서 낯선 아시아 인종으로 살아갈 자신이 과연 있는지? 캐나다, 미국, 호주라고 별반 다를까? 아니다. 그 곳에서도 한인들은 한인들끼리 수다를 떨고 한국 신문을 보고 한국 드라마를 본다. 그렇다면 외국인으로 살기 좋은 나라는 어디가 있을까? 요새 여행으로 한창 뜨는 동남아-베트남, 태국 이런 나라? 한 번 생각해볼만한 문제이다.

예전에 인도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인도 여행에서 꼭 빠지지 않는 장소가 있는데, 바로 갠지스 강가이다. 한쪽에서는 시체를 화장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개들이 새끼를 낳아 기르는, 또한 밤에는 기이한 축제가 열리는 전설의 장소가 갠지스 강가다. 남들 다 간다는 이 장소에서 나도 며칠 동안 앉아서 인간(또는 시체) 군상을 바라보며 생각을 좀 해봤는데, 아무리 봐도 죽음이라는게 허무했다. 크샤트리아 계급이든 수드라 계급이든 똑같이 불타 없어지는걸 보면서 공수래공수거를 제대로 느꼈달까.

에리히 프롬의 역작 [소유와 존재]를 보면 소유적 실존양식을 배제하고 존재적 충만감을 느끼기 위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식이 기술되어 있다. 요약하자면 대략 '자기를 새롭게 하는것, 자기를 성장시키고 흐르게 하며 사랑하는 것. 운명이 우리에게 허용하는 아득한 목표지점이 어디에 있든 간에 끊임없이 성장하는 생명의 과정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실존적 인간의 올바른 행동양식이다.

얼마나 멋있는가. 무소유 사상과도 통하는 개념인데, 실제로 무소유로 세상을 살아가면 무서울 것이 없다. 가진 게 없으니 뺏길 게 없어 두려울 게 없고, 생명조차도 자신에게 일시적으로 주어진 것임을 자각하면 삶에 대한 집착이 사라진다.

나는 호치민에 혼자 살면서 그 존재적 삶의 방식을 영유하려고 해봤다. 내가 좋아하는 베트남어를 배우고, 영화와 뮤지컬을 보고, 발리우드 댄스를 배우며, 베트남 친구들을 만나 같이 배낭여행을 다니며 충분히 삶을 즐겼더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불편한 진실을 깨달았다. 나는 소득과 물가의 차이를 이용해 건물주 아들급의 부유한 백수 생활을 하고 있던 것뿐이었다. 나는 '소유'가 아니라 '소위 꼴갑'을 떨고 있었던 거였다.

베트남에서 영화 한 편이 3천원이라지만, 영화관 알바생 시급은 700원이다. 발리우드 댄스 강습은 시간당 4천원이지만 댄스 홀을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월급은 15만원이다. 기름값은 리터당 700원이지만 택시기사의 월급은 월 30만원 언저리이다. 베트남의 물가가 한국인이 느끼기에 싸다고 해서 그 업에 종사하는 베트남인에게도 똑같이 싼 것은 아니었던 거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서민의 삶은 고달프고, 부유층은 여유롭게 살아간다"

다시 첫 문단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돈 많은 한국인이 부유층으로 행세할 수 있는 베트남은 과연 천국일까? 베트남에 사는 한국 교민은 대략 15만명이다. 과연 이 15만명이 모두 행복하게 살아가냐면...글쎄. 베트남에서도 한국인들의 이미지가 급격하게 하락하는 중이다. 십 년 전 필리핀의 모습이 재현된달까. '마싸랍 코리안!'처럼.

베트남 내 거의 모든 지역을 다녀보고 단 하나의 절대 법칙을 발견했다. "한국인 접촉도와 호감은 반비례한다." 한국인을 많이 접해본 지역일수록 한국인에 대해 반감을 더 크게 가진다는 뜻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 답은 의외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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