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꼬창

태국 꼬창
태국 꼬창(2014)

7/26/2015

중국 여행 1부 - 황샨(황산)

오늘은 황샨(황산) 1일 코스에 대해 써볼까 한다.

보통 황샨은 하루만에 절반을 둘러보는 코스가 있고, 이틀 혹은 사흘을 잡고 산 위에 숙박하며 일출, 일몰, 절경을 모두 둘러보는 코스가 있는데 한국인은 빨리빨리 정신으로 당일 등산을 많이 한다. 

나도 그 중에 속하는지라 당일 코스를 선택했는데 이왕 올라간 거 다 보겠다는 정신으로 열심히 걸어서 산 전체를 빙 둘러보고 왔다. 등산 전날 내가 호스텔 매니저에게 내 계획을 말하자 미친X 취급을 했지만 난 결국 해냈고 다음날 매니저는 내가 신기록을 세웠다고 칭찬하더라. 나를 따라서 당일치기로 바쁘게 다녀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정표를 정리한다. 이 글을 참고하는 모두가 부디 알찬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툰시(황샨의 근처의 거점 도시)에서 황샨을 향해 출발하는 버스는 대개가 오전 6시에 출발한다. 때문에 탕커우 마을(황샨 바로 아랫마을)에 도착하는 버스는 모두 다 같이 7시 즈음에 도착하는데, 이때가 관건이다. 수십 대의 버스가 몰려드는 그 순간에서 긴 줄을 피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줄을 향해 뛰는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육교가 보일텐데 그 위를 달려가 건너 내려가자.

그러면 매표소와 긴 줄이 보일 건데, 이 때 매표소로 가면 안 되고 바로 줄 뒤로 가서 서야 한다. 매표소 가는 시간조차 아깝다.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 보면 어느 순간 건물 안으로 진입하는데 건물 안쪽에 보면 매표소가 또 있다. 이제 여기서 표를 사면 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밖에서 사왔기에 안쪽에는 줄이 없어서 안에서 사는 것이 훨씬 빠르다.


줄을 서서 들어간 건물. 저 줄 끝이 드디어 케이블카행 셔틀 버스를 타는 곳이다.

저기 끝에 조그만 창구가 매표소이다. 윈구(원곡) 케이블카 티켓을 사자. 가격은 19위안.



 셔틀버스를 타고 케이블카 기점으로 오면 8시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이제 케이블카를 타러 가면 된다.




케이블카 기점에 도달했다. 여기서도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뛰자.

당신이 아무리 열심히 뛰었더라도 보통 이런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이 정도 줄이라면 1시간 반 정도 대기하게 된다.

한참을 기다려 드디어 윈구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길.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한 컷.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9시 30분 정도였다. 이제부터 부지런히 등산을 시작하자.
참고를 위해 포인트별로 나의 도달 시간을 적자면 다음과 같았다.

시신봉(beginning to believe) 9시 50분
사자봉(Lion Peak) 10시 30분
백운정(Cloud dispelling pavilion) 11시

이 코스가 절대로 쉽진 않을 것이다.
거의 속보로 산행을 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서해대협곡은 꿈도 꿀 수 없기에 서둘러야만 한다.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저 소나무와 바위가 유명하단다.


파노라마로 찍은 풍경




11시에 백운정에 도착하면 잠시 쉰다. 이제부터 진입할 서해대협곡은 최소한 3시간이 걸린다. 트레킹 지도에는 6시간 정도라고 나와있지만 한국인의 정신을 발휘해주면 3시간이면 적당하다.

백운정에서 잠시 쉰 다음에 제 1환(1st ring)과 제 2환(2nd ring)을 편도로 건너질러가면 12시 정도가 된다. 여기부턴 다시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걸어가는 길은 2015년 7월 당시에 막혀있었다. 때문에 1시간 반 정도 기다려 시하이(서해) 케이블카를 타고 백운(baiyun)호텔에 도착하면 14시가 될 것이다.

여기서 잠시 광명정을 다녀오자. 1~20분 정도면 왕복할 수 있다. 사람이 꽉 들어차면 좀 더 걸리기도 한다. 광명정을 본 뒤에는 하산을 시작할 차례이다. 나는 하산시에 걸어갈 예정이었으므로 14시 20분에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에는 2~3시간 정도면 적당하다.




이런 계단은 참 흔하다.

도중에 만나게 되는 협곡

서해대협곡의 풍경



열심히 걸어서 옥병루(yupinglou) 호텔에 도착하니 15시 정도였고, 이어서 계속 걸어내려가 자광사(mercy light temple)에 도착하니 16시 30분이었다. 여기서 이제 다시 셔틀버스(19위안)을 타고 탕커우 마을로 가야 한다. 탕커우 마을에서 툰시행 버스 막차가 17시 30분이기에 서둘러야 한다.




카메라에 배터리가 없어 많은 사진을 찍지 못해 설명이 좀 부실해 아쉽지만 포스트의 주 목적은 일정표를 정리하는 것이었으니 어느 정도의 목적은 달성한 것 같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6시: 툰시 출발(관광버스)
7시: 탕커우 도착, 셔틀버스로 환승
8시: 윈구 케이블카 기점 도착, 케이블카 대기
9시 30분: 윈구 케이블카 하차, 등산 시작
9시 50분: 시신봉 도착
10시 30분: 사자봉 도착
11시: 백운정 도착
12시: 서해대협곡 제 2환 완주, 서해 케이블카 대기
14시: 백운호텔 도착, 광명정 구경
14시 20분: 하산 시작
15시: 옥병루 도착
16시 30분: 자광사 도착
17시: 탕커우 버스 정류장 도착
17시 30분: 툰시행 버스 탑승(17시 30분이 막차 시간이다)


지도까지는 미처 만들지 못해 괜찮은 지도 링크 몇 개를 첨부한다. 포인트 표시가 각각 한글, 한자, 영어로 되어있지만 여러 개를 서로 비교하면서 보면 코스 정리가 한결 수월할 것이다.

지도1

지도2

지도3



툰시에서 첫차를 타고 출발해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모든 중요 포인트는 다 찍고 돌아보는 이른바 고속 산행 코스입니다. 평소에 산행을 즐겨하는 것도 아니고, 축구나 농구 같은 구기 종목조차 안 하는 보통 이하 체력의 젊은이이지만 패기 하나로 해냈으니 여러분들도 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7/24/2015

중국 배낭여행 총평 (샹하이, 쑤저우, 황샨, 시안, 뤄양)

11년만에 중국을 다시 다녀왔다. 코스는 샹하이-쑤저우-툰시-황샨-시안-뤄양이었다.

1. 난 그 동안 중국 한족과 한국인을 외모로 구별할 수 있을 거라 생각 했는데 완전히 오해였다. 딱봐도 한국인인데 알고보니 중국인인 경우는 수도 없었지만 딱봐도 중국인인데 한국인인 경우는 없었다. 달리 말하면 한국인은 중국인의 부분집합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일부 중국 학자들이 한국인은 운좋게 독립을 유지한 중국의 소수민족일 뿐이라며 동북공정을 하는 것도 이해가 불가능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이 문제에 대해서 중국학생과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그의 논리가 기가 막혔다. 요약하자면

"과거에 한국을 침략한 중국은 오늘날의 중국과 다르다. 그 시기의 중국은 분열된 상태였기에 서로 싸우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중국은 하나의 중화 뮨명을 지향한다. 따라서 한국, 베트남, 미얀마, 몽골 등은 중국에 흡수되어 다함께 밝은 미래를 도모하는 게 당연하다."

는 것이었다. 100년 전 일본의 동아시아공영론과 다를 바 없는 기가 막힌 논리가 아닌가! 중국이 그래서 티벳이랑 위구르를 점령해 자치구로 삼았구나 싶었다. 역사는 어디까지나 힘의 논리에 따를 뿐이다. 아마 한국이랑 베트남도 냉전 때문에 분단되지 않았다면 이미 중국의 소수민족 자치구가 되지 않았을까? 실제로 장제스의 군대가 베트남에 주둔했었고, 마오의 군대가 한반도에 들어왔었던 걸 생각하면 아예 불가능한 상상은 아닐 것이다.

추가로, 중국이 내부의 분열을 막기 위해 주변국(한국,베트남,미얀마,필리핀,몽골,인도)와 영토 분쟁을 일으키는 것 같기도 하다. 중국에선 공항은 물론이고 지하철역, 기차역, 버스터미널, 박물관, 역사유적에서마저 보안 검색을 실시하는 걸 보았을 때 소수민족이 저지르는 테러에 대한 공포가 엄청난 게 분명하다. 그리고 인간 사회의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에는 외부 집단에 대한 적개심이 가장 효과적이기 마련이다.



시안 샨시 박물관의 보안 검색대. 자기 짐을 누군가에게 뺏기지 않으려는 열정들이 대단하다.




2. 샹하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자기부상열차가 시속 430km를 찍더라. 중국은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예전에 이미 한국을 뛰어넘은 게 분명하다. 누가 아직도 샌드위치론을 주장하는가?



샹하이 공항철도. 무려 시속 430km이다. (Shanghai Maglev 430km/h)

3. 보행자들이 가방을 앞으로 매고 다니는 빈도가 각 도시마다 달랐다. 샹하이는 상당수가 그렇게 하고 다녔는데 툰시 같은 시골 도시에서는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각 도시별 빈도를 조사해본다면 각각의 사회 신뢰 수준을 수치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가방을 앞으로 멘 사람의 사진은 못 찍었지만 이건 찍었다.
에어컨 바로 밑에 플라스틱 박스로 리모컨을 고정시켜놨다.
얼마나 도난이 많았으면?


4. 샹하이에서 유대 피난민 기념관들 갔었다. 역시 유대 자본의 힘은 어마어마하더라. 아마 그곳이 샹하이에서 가장 정성이 많이 들어간 박물관일거다. 심지어 무료 가이드투어까지 있었으니 말 다했다. 그리고 그 가이드처자는 "중국은 유대인들을 언제나 환대했답니다"라고 했는데, 에라 이 사람아, 타 민족이 피난 간 이국 땅에서 환대받은 적은 어느 시기에 어느 나라에서도 없었어요.

유대 피난민 기념관 입구의 조각상


5. 유커가 한국에서 난리치고 간다고 모든 중국인이 나쁜 건 아니다. 30년 전에 니혼진이 파리의 호텔에서 팬티만 입고 돌아다녔다고 모든 일본인이 나빴던 건 아니고, 15년 전에 한국 깃발부대가 태산에 가서 김치찌개에 참이슬 마시고 고성방가했다고 모든 한국인이 나빴던 게 아니듯.
 일반적으로 소국과 대국이 인접해있으면 소국은 편견, 대국은 오만으로 상대를 대하기 마련이다. 이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인도와 네팔, 중국과 베트남이 그 대표적 예 아닐까?
             

6. 현지어를 배운 적이 없어도 얼마든지 혼자 배낭여행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이번에도 워뿌슈중궈런(나는 중국인이 아닙니다) 또샤우취엔(얼마에요) 샤이거,시소우젠짜이나(어이 쾌남, 화장실이 어디에요?) 이 정도만 썼다.


7. 그리고 필담으로도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초등학교 이후로 한자를 다 잊어버려 기억나는 건 약 300자에 불과하지만 그걸 손바닥에 써가며 중국인들과 대화를 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저 멀리 500년 전 조선의 사신들도 명의 관리들과 필담으로 대화했다더라.


8. 중국이 한 자녀 정책을 시행한지 어언 30년, 왠만한 꼬마아이들은 전부 다 소왕자, 소공주처럼 위세를 떨친다. 아이 하나당 어른 여섯 명이 붙는 2대 독자들이시니 어련하실까. 이렇게 귀하게 자라신 꼬마님들이 과연 미래 중국 사회에서 중추가 되었을 경우 이 나라는 과연 어떤 모습이 될까?


9. 예전에 읽었던 한 역사책에서 로마 제국과 진 제국을 비교하기를, 똑같은 벽돌을 가지고 로마는 도로를 텄고 진은 벽(만리장성)을 쌓은 것이 두 문명의 진로를 갈랐다 했다. 소통이 원활해진 유럽은 크게 진보한 반면, 배타정책을 시행한 동아시아는 정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대에 와서는 아닌듯 하다. 일대일로까지 갈 것도 없이, 중국의 으뜸이라는 황샨(한국 발음 황산)에 올랐을 때 그 정도 산에 케이블카 노선이 세 개나 있는 걸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현대 중국인들의 길에 대한 집착은 가히 병적이다. 히말라야가 중국에 있었다면 지금쯤 케이블카 노선이 이백 개쯤 설치되어 스키장이 되었을 것이다.

황샨의 케이블카. (Huangshan Cableway)


10. 나는 어쨌든 그 케이블카를 한 번은 탔는데 두 번 탈 돈(편도 16000원)은 없어 계단을 따라 오르고 있었다. 혼자서 길도 모르고 한참 오르고 있었는데 인적이 드문 것이 느낌이 쌔했다. 마침 근처에 있던 한 중국인 아저씨에게 이 길이 맞냐고 물어보니 아니라는 게 아닌가. 낙심해 그 자리에 주저앉은 내게 아저씨가 생수 한 병을 건네주었다. 세상에, 저 생수도 산중에선 꽤나 비싼 가격일텐데. 애초에 그 돈도 아끼려고 산밑에서부터 물 몇리터를 들고 올라가던 내게 그건 엄청난 선물이었다. 샤이거, 쎼쎼.


11. 중국의 스케일이 정말 어마어마한게, 시안(옛 장안)의 성곽에 올라갔더니 전동차를 타고 한 바퀴 도는 투어가 있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성곽을 돌아보는데는 몇 시간이 걸린단다. 그런데 이마저도 옛 장안의 전성기에 비하면 7분의 1 규모로 축소된 것이라니..


시안 성벽 (Xian City Wall)

그리고 카트 (Xian City Wall Kart)

어마어마한 병마용의 규모 (Qin Terracota army. Bing Ma Yong)

여긴 쑤저우인데 역 앞의 광장이 이만치 크다. 저 동상은 정말로 거대하다. (Xuzhou station frontyard)

12. 중국이 진정 사회주의 공산국가인가? 좁은 골목길을 걷다가 공안차와 Jeep가 딱 마주친 상황을 목격했다. 지프의 운전자는 딱 봐도 "내가 이 동네의 최고 갑부다, 이 천놈들아!"의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는 무서울 게 없다는 중국 정치권력의 집행자 공안. 기세만은 둘 다 만만치 않았는데, 1분 정도 기싸움을 하다가 공안이 후진을 하기 시작하더라. 누가 봐도 지프 운전자가 후진을 해야 할 골목길이었지만 중국은 미국보다 더한 천민 자본주의 국가일 뿐이라는 걸 느꼈다.

공안과 Jeep의 대치 장면


13. 상업의 역사를 거론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게 중국 상인이다. 화교를 포함한 중국 상인의 상술은 가히 세계 최고일 것이다. 그런데 마오쩌둥은 이런 민족을 공산국으로 개조하려 했다니, 그 당시 토지불평등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최고의 가치를 돈에 두는 중국인들이 공산당의 대장정에 호응했다는 건 엄청난 사회 불만이 팽배했다는 뜻일 것이다. 오늘날의 정세도 심상치 않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요즘, 과연 한국식 자본주의는 지속적인 안녕을 꾀할 수 있을 것인가?







글 내용과는 관계 없는, 추가사진



시안 종루 야경. (Xian Zhong Lu nighttime)
시안 고루 야경 (Xian Gu lu nighttime)

세상에 이렇게 복잡한 한자는 처음 봤다. 뺭뺭면이란다. (Biang Biang Mien)
  
햇빝 가리기에 매우 유용해보인다. 중국 내륙 도시에서 많이 보이더라. (Umbrella Moped)

쑤저우 어딘가에 있는 사원의 호숫가 야경 1

쑤저우 어딘가에 있는 사원의 호숫가 야경 2

셋째 화장실이라...

도대체 뭘 쓰고 싶었던 걸까? 한국인 맛?

호스텔에서 만나 같이 놀았던 중국인, 멕시코인 친구들

3/04/2015

삶의 기본적 조건에 관하여

오늘의 대화 주제 중에 아프리카의 사파리가 있었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길래 이 곳에 써본다.

돈 많은 유럽인, 동아시아인들이 아프리카에 놀러가 지프를 타고 사자와 기린, 영양을 보며 놀러다니는 소위 '진짜배기 사파리' 말이다. 그런데 그게 과연 진짜배기 사파리로 부를 수 있는 일인가? 애초에 그 사파리들은 관광객용으로 개발되어 안전하기 짝이 없기에 사자를 보더라도 마음 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현지 사람들도 과연 그 여유와 낭만을 누릴 수 있을까? 그들에겐 사자의 위협이 현실적인 공포인데 말이다. 애초에 돈 많은 관광객들이 하듯이 DSLR과 산탄총을 들고 지프를 이용해 밀림을 누빌 수 없는 현지 사람들에겐 야생의 세계가 위협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예전에 네팔의 찌뜨완 국립공원에서 현지인과 나누었던 대화가 있다. 그 사람이 가이드를 해주기로 했기에 아침 해뜰무렵 조류 관찰을 갔었다. 가면서 코뿔소 얘기를 한 기억이 있다.

현지가이드 : 저기 저 농장 보여? 어젯밤에 코뿔소가 와서 헤집고 다닌 자국이야.

나 : 우와 진짜? 가서 구경하자!

현지가이드 : 가서 뭐하게?

나 : 코뿔소 발자국 사진이라도 찍게! 아 코뿔소를 직접 봤다면 참 좋았을 텐데 진짜 아쉽다...


이렇게 반응하는 나를 보고 가이드는 어이없어했다. 그 때는 그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들에게 코뿔소와 호랑이의 존재는 삶의 실제 위협이었다. 코뿔소가 와서 농작물을 망치고, 호랑이들은 가축을 잡아먹고.

그들은 야생동물과 맞닥뜨릴시 저항하기 위해 길다란 나무 몽둥이를 가지고 다니고 다녔다.






나는 그 몽둥이를 보고 왜 그 때는 멋있다고만 생각했을까.













 결국 나는 그 국립공원의 어딘가에서 야생의 코뿔소를 실제 볼 수 있었다. 완전히 신난 나는 가이드에게 코뿔소 근처로 가보자고 졸랐지만 그는 내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코뿔소의 시력이 나쁘기에 망정이지, 그 때 나는 너무나 철이 없었다.

네팔의 로컬버스

불현듯 네팔 포카라의 로컬버스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여행비도 아끼고 현지 사람들을 더 만나고 싶어 로컬 버스를 자주 타고 다녔지만 유독 네팔의 로컬버스는 그 충격이 강렬했다.


운전기사와 차장이 따로 존재하는 그 버스.
따로 티켓이 존재하지 않아 차장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현금을 내는 그 버스.
내가 만난 대부분의 네팔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차장이 요금을 속이는 경우는 없었지만 아닌 경우도 꽤 있다고 들었다.


버스가 승객을 얼마나 더 태우냐에 따라 기사와 차장의 수입이 결정되기에 정류장을 딱히 지키는 것도 아니다. 버스가 문을 열고 달리는 경우도 꽤 많은데, 이 때 차장은 문 밖에 매달려 길가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호객행위를 한다.

"ㅇㅇ갑니다 ㅇㅇ! ㅇㅇ갑니다! 버스 지나가요!"



창문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얇은 플라스틱과 같은 형상이며 고정대가 부러지거나 한 구석이 깨져있어 항상 차가운 바깥바람이 새어든다. 따뜻한 낮에는 괜찮지만 추운 밤이 되면 그야말로 고역이다.


좌석은 또 어떠한가. 1석의 크기가 얼마나 비좁은지, 키 170cm에 몸무게 60kg인 내가 앉아도 다리를 잔뜩 붙이고 있어야 할 정도이다. 덩치 큰 북유럽인들은 아예 앉지 못할 정도였지만, 그들은 서있을 수도 없었다. 버스 천장이 너무나 낮아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하기 때문.

바로 다음과 같이 말이다.



2/07/2015

네팔 여행 4부 - 카트만두, 박타푸르

 드디어 마지막 종착역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90일간 남아시아일주의 마지막 여행지가 될 곳이다. 카트만두에서 쓸 수 있는 시간은 총 이틀 반. 새벽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걸어다니기로 했다.



타멜의 새벽 모습. 방콕의 카오산로드 못지않은 여행자거리다.
  
더르바르 광장. 더르바르라고 불리는 광장은 카트만두 근교에 꽤 많이 있다.

조그만 제단

이 곳에는 항상 비둘기들이 떼지어 있는데 소녀들이 비둘기를 쫓으며 즐거워한다.

박타푸르 광장 내부

우리가 산에서 약수를 받았다면 이 사람들은 지하에서 약수를 받는다.

견과류 라씨. 한국의 씨앗호떡 정도의 위상이다.
견과류에는 대체 어떤 마법이 있는 걸까.






 자연에 관심이 많기에 국립 자연사박물관도 가보았다. 가보니 외국인은커녕 내국인도 없는 휑한 곳이라 관리인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이것저것 물어보자 좋아하면서 잘 대답해줬다. 네팔에서도 취직난은 꽤 큰 문제 같았다.

자연사박물관 1. 영구보존된 아기코끼리

자연사박물관 2

자연사박물관 3. 진짜 박제이다.




 국립 자연사박물관에서 나온 다음에는 국립박물관으로 갔다. 어느 나라의 문화재 보존 수준을 보려면 국립박물관을 보라는 말이 있다. 네팔은 문화재 보존에 거의 관심이 없어 보였다. 정국 불안정 때문일까?

영 불안해 보이는 안내판. 정문에 이게 달려있다.

국립박물관 1. 내부 역시 창문과 냉난방조절자이가 없다.
그나마 이건 유리통 안에 있지만,

국립박물관 2. 이건 그냥 밖에 있다.

국립박물관 3. 여러 불상들

각 나라의 전통 의상을 착요한 인형들을 모아놨는데, 일부 국가는 거의 모욕 수준이다.
예를 들면 왼편의 몽골...몽골인들이 보면 화내지 않을까..

한국 인형. 어떻게 이걸 구했는지 신기하다.

누가 보면 스페인에는 처키가 사는 줄 알 듯.






 이번 여행에서 다녔던 나라들 중 가장 초라했던 국립박물관을 나온 뒤에는 스와얌부나트 사원으로 향했다. 이 사원은 원숭이떼가 많기로 유명하다. 손에 먹을거리를 들고 다니면 안되는데, 원숭이들이 잽싸게 뺏어가기 때문이다. 뺏어가기만 하면 다행이고, 행여나 손톱으로 할퀴기라도 하면 광견병 주사를 바로 맞아야 한단다.




스와얌부나트 사원의 중심탑

그리고 원숭이떼

가족인가보다

포즈 좀 잡을 줄 아는 원숭이

사원 근처에서 파는 기념품 1

사원 근처에서 파는 기념품 2

사원 내부에 가지런히 모여있는 돌탑들

사원 한구석에서는 새끼 강아지들이 한데 모여 곤히 자고 있다.

사원에서 바라본 일몰 무렵





 다음날은 박타푸르로 향했다. 박타푸르는 카트만두 근교의 도시인데, 예전에는 독립 왕국이었던 곳이다. 중세의 건물과 분위기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관광지로 인기가 좋다. 편하게 택시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난 역시 로컬버스를 타고 갔다.


로컬 버스. 대부분 대학생들인데 이 날은 시험일이라 버스 안에서도 공부에 열심이였다.




 카트만두에서 박타푸르까지는 버스로 1시간 반 정도 걸렸다.

박타푸르 1

박타푸르 2


박타푸르 3. 어딜 가나 많은 직물 가게.

박타푸르 4. 더르바르 광장

박타푸르 5. 역시나 더르바르 광장의 내부

박타푸르 6. 이런 돌탑도 있다.

박타푸르 7. 이 곳에 올라가 보았다.

박타푸르 8.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박타푸르 9. 각종 장식이 화려하다.

박타푸르 10. 단체로 관람하러 온 초등학생들.

박타푸르 11. 닭들이 광주리 안에 갇혀 있다.

박타푸르 12. 조각에 열심인 장인 청년.
  



 한참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파 간식거리를 좀 사먹었다.


킹커드. 달디단 생크림 느낌이다.

버블티. 정체를 알 수 없는 투명한 버블들이 들어있다.
타로 열매가 아닌 건 확실한데, 뭔지 알 수 없다.
이빨에 닿는 순간 터질정도로 약한 비누거품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나도 내가 여기 탄 게 신기하다.




 카트만두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이렇게 카트만두와 근교를 마지막으로 내 이번 여행은 끝이 났다.

 새롭게 느낀 점이 참 많은 여행이었다. 모든 속마음을 여기에 밝힐 수는 없고, 대신 이 정도(링크)면 적당하다고 본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절대로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