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만에 중국을 다시 다녀왔다. 코스는 샹하이-쑤저우-툰시-황샨-시안-뤄양이었다.
1. 난 그 동안 중국 한족과 한국인을 외모로 구별할 수 있을 거라 생각 했는데 완전히 오해였다. 딱봐도 한국인인데 알고보니 중국인인 경우는 수도 없었지만 딱봐도 중국인인데 한국인인 경우는 없었다. 달리 말하면 한국인은 중국인의 부분집합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일부 중국 학자들이 한국인은 운좋게 독립을 유지한 중국의 소수민족일 뿐이라며 동북공정을 하는 것도 이해가 불가능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이 문제에 대해서 중국학생과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그의 논리가 기가 막혔다. 요약하자면
"과거에 한국을 침략한 중국은 오늘날의 중국과 다르다. 그 시기의 중국은 분열된 상태였기에 서로 싸우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중국은 하나의 중화 뮨명을 지향한다. 따라서 한국, 베트남, 미얀마, 몽골 등은 중국에 흡수되어 다함께 밝은 미래를 도모하는 게 당연하다."
는 것이었다. 100년 전 일본의 동아시아공영론과 다를 바 없는 기가 막힌 논리가 아닌가! 중국이 그래서 티벳이랑 위구르를 점령해 자치구로 삼았구나 싶었다. 역사는 어디까지나 힘의 논리에 따를 뿐이다. 아마 한국이랑 베트남도 냉전 때문에 분단되지 않았다면 이미 중국의 소수민족 자치구가 되지 않았을까? 실제로 장제스의 군대가 베트남에 주둔했었고, 마오의 군대가 한반도에 들어왔었던 걸 생각하면 아예 불가능한 상상은 아닐 것이다.
추가로, 중국이 내부의 분열을 막기 위해 주변국(한국,베트남,미얀마,필리핀,몽골,인도)와 영토 분쟁을 일으키는 것 같기도 하다. 중국에선 공항은 물론이고 지하철역, 기차역, 버스터미널, 박물관, 역사유적에서마저 보안 검색을 실시하는 걸 보았을 때 소수민족이 저지르는 테러에 대한 공포가 엄청난 게 분명하다. 그리고 인간 사회의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에는 외부 집단에 대한 적개심이 가장 효과적이기 마련이다.
시안 샨시 박물관의 보안 검색대. 자기 짐을 누군가에게 뺏기지 않으려는 열정들이 대단하다. |
2. 샹하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자기부상열차가 시속 430km를 찍더라. 중국은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예전에 이미 한국을 뛰어넘은 게 분명하다. 누가 아직도 샌드위치론을 주장하는가?
샹하이 공항철도. 무려 시속 430km이다. (Shanghai Maglev 430km/h) |
3. 보행자들이 가방을 앞으로 매고 다니는 빈도가 각 도시마다 달랐다. 샹하이는 상당수가 그렇게 하고 다녔는데 툰시 같은 시골 도시에서는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각 도시별 빈도를 조사해본다면 각각의 사회 신뢰 수준을 수치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가방을 앞으로 멘 사람의 사진은 못 찍었지만 이건 찍었다. 에어컨 바로 밑에 플라스틱 박스로 리모컨을 고정시켜놨다. 얼마나 도난이 많았으면? |
4. 샹하이에서 유대 피난민 기념관들 갔었다. 역시 유대 자본의 힘은 어마어마하더라. 아마 그곳이 샹하이에서 가장 정성이 많이 들어간 박물관일거다. 심지어 무료 가이드투어까지 있었으니 말 다했다. 그리고 그 가이드처자는 "중국은 유대인들을 언제나 환대했답니다"라고 했는데, 에라 이 사람아, 타 민족이 피난 간 이국 땅에서 환대받은 적은 어느 시기에 어느 나라에서도 없었어요.
유대 피난민 기념관 입구의 조각상 |
5. 유커가 한국에서 난리치고 간다고 모든 중국인이 나쁜 건 아니다. 30년 전에 니혼진이 파리의 호텔에서 팬티만 입고 돌아다녔다고 모든 일본인이 나빴던 건 아니고, 15년 전에 한국 깃발부대가 태산에 가서 김치찌개에 참이슬 마시고 고성방가했다고 모든 한국인이 나빴던 게 아니듯.
일반적으로 소국과 대국이 인접해있으면 소국은 편견, 대국은 오만으로 상대를 대하기 마련이다. 이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인도와 네팔, 중국과 베트남이 그 대표적 예 아닐까?
6. 현지어를 배운 적이 없어도 얼마든지 혼자 배낭여행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이번에도 워뿌슈중궈런(나는 중국인이 아닙니다) 또샤우취엔(얼마에요) 샤이거,시소우젠짜이나(어이 쾌남, 화장실이 어디에요?) 이 정도만 썼다.
7. 그리고 필담으로도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초등학교 이후로 한자를 다 잊어버려 기억나는 건 약 300자에 불과하지만 그걸 손바닥에 써가며 중국인들과 대화를 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저 멀리 500년 전 조선의 사신들도 명의 관리들과 필담으로 대화했다더라.
8. 중국이 한 자녀 정책을 시행한지 어언 30년, 왠만한 꼬마아이들은 전부 다 소왕자, 소공주처럼 위세를 떨친다. 아이 하나당 어른 여섯 명이 붙는 2대 독자들이시니 어련하실까. 이렇게 귀하게 자라신 꼬마님들이 과연 미래 중국 사회에서 중추가 되었을 경우 이 나라는 과연 어떤 모습이 될까?
9. 예전에 읽었던 한 역사책에서 로마 제국과 진 제국을 비교하기를, 똑같은 벽돌을 가지고 로마는 도로를 텄고 진은 벽(만리장성)을 쌓은 것이 두 문명의 진로를 갈랐다 했다. 소통이 원활해진 유럽은 크게 진보한 반면, 배타정책을 시행한 동아시아는 정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대에 와서는 아닌듯 하다. 일대일로까지 갈 것도 없이, 중국의 으뜸이라는 황샨(한국 발음 황산)에 올랐을 때 그 정도 산에 케이블카 노선이 세 개나 있는 걸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현대 중국인들의 길에 대한 집착은 가히 병적이다. 히말라야가 중국에 있었다면 지금쯤 케이블카 노선이 이백 개쯤 설치되어 스키장이 되었을 것이다.
황샨의 케이블카. (Huangshan Cableway) |
10. 나는 어쨌든 그 케이블카를 한 번은 탔는데 두 번 탈 돈(편도 16000원)은 없어 계단을 따라 오르고 있었다. 혼자서 길도 모르고 한참 오르고 있었는데 인적이 드문 것이 느낌이 쌔했다. 마침 근처에 있던 한 중국인 아저씨에게 이 길이 맞냐고 물어보니 아니라는 게 아닌가. 낙심해 그 자리에 주저앉은 내게 아저씨가 생수 한 병을 건네주었다. 세상에, 저 생수도 산중에선 꽤나 비싼 가격일텐데. 애초에 그 돈도 아끼려고 산밑에서부터 물 몇리터를 들고 올라가던 내게 그건 엄청난 선물이었다. 샤이거, 쎼쎼.
11. 중국의 스케일이 정말 어마어마한게, 시안(옛 장안)의 성곽에 올라갔더니 전동차를 타고 한 바퀴 도는 투어가 있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성곽을 돌아보는데는 몇 시간이 걸린단다. 그런데 이마저도 옛 장안의 전성기에 비하면 7분의 1 규모로 축소된 것이라니..
시안 성벽 (Xian City 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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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쑤저우인데 역 앞의 광장이 이만치 크다. 저 동상은 정말로 거대하다. (Xuzhou station frontyard) |
12. 중국이 진정 사회주의 공산국가인가? 좁은 골목길을 걷다가 공안차와 Jeep가 딱 마주친 상황을 목격했다. 지프의 운전자는 딱 봐도 "내가 이 동네의 최고 갑부다, 이 천놈들아!"의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는 무서울 게 없다는 중국 정치권력의 집행자 공안. 기세만은 둘 다 만만치 않았는데, 1분 정도 기싸움을 하다가 공안이 후진을 하기 시작하더라. 누가 봐도 지프 운전자가 후진을 해야 할 골목길이었지만 중국은 미국보다 더한 천민 자본주의 국가일 뿐이라는 걸 느꼈다.
공안과 Jeep의 대치 장면 |
13. 상업의 역사를 거론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게 중국 상인이다. 화교를 포함한 중국 상인의 상술은 가히 세계 최고일 것이다. 그런데 마오쩌둥은 이런 민족을 공산국으로 개조하려 했다니, 그 당시 토지불평등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최고의 가치를 돈에 두는 중국인들이 공산당의 대장정에 호응했다는 건 엄청난 사회 불만이 팽배했다는 뜻일 것이다. 오늘날의 정세도 심상치 않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요즘, 과연 한국식 자본주의는 지속적인 안녕을 꾀할 수 있을 것인가?
글 내용과는 관계 없는, 추가사진
시안 종루 야경. (Xian Zhong Lu nighttime) |
시안 고루 야경 (Xian Gu lu nighttime) |
세상에 이렇게 복잡한 한자는 처음 봤다. 뺭뺭면이란다. (Biang Biang Mien) |
햇빝 가리기에 매우 유용해보인다. 중국 내륙 도시에서 많이 보이더라. (Umbrella Moped) |
쑤저우 어딘가에 있는 사원의 호숫가 야경 1 |
쑤저우 어딘가에 있는 사원의 호숫가 야경 2 |
셋째 화장실이라... |
도대체 뭘 쓰고 싶었던 걸까? 한국인 맛? |
호스텔에서 만나 같이 놀았던 중국인, 멕시코인 친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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