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꼬창

태국 꼬창
태국 꼬창(2014)

2/20/2016

베트남은 빠르게 변화한다.

 한국처럼 설을 쇠는 베트남. 설을 기해 내가 사는 동네의 음식값이 꽤 올랐다. 작년까지만 해도 30000동이었던 쌀국수가 35000동이 되고, 35000동이었던 갈비밥은 40000동이 되었다. 상승률로 따지면 15%정도이고, 한국 돈으로 하면 이제 200원 정도가 올라 2000원이 된 셈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분명 싼 가격이지만, 베트남의 물가 기준으로 생각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지금껏 식비로 하루에 5000원을 썼는데, 이제부턴 6000원을 써야 한다. 한 달에 3만원씩이 더 들어가는 셈이다.

*베트남의 물가는 날이 다르게 급상승 중이라, 일부 식당이나 카페를 가면 메뉴판에 가격이 안 써있거나 보드마카로 그 달의 가격을 휘갈겨놓은 경우도 있다.

 우리가 "외국은 살기 좋다"라고 말할 때 "살기 좋다"라는 말에는 두 가지 상반된 경우가 있다. '내국인으로서 그 나라에 살기 좋다' 또는 '외국인으로서 그 나라에 살기 좋다' 이렇게 두 가지이다. 북유럽 국가는 전자에 해당하고, 개도국 중 발전중인 나라(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은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면 쉽다. 한국인이 스웨덴에 이민을 가려고 할 경우에는 배관수리공 같은 3D직업을 택하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인도네시아에 가서 배관수리공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는 소득과 물가의 국가별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한국에서 열심히 일해 저축한 2억원을 스웨덴에 들고 가봤자, 몇 년 생활비로 다 써버릴 게 뻔해 당장 노동력을 바치고 먹고 살 거리를 마련해야 하지만, 베트남에 2억을 들고 오면 최소한 대형 식당 하나는 번듯하게 차릴 수 있다. 물론 2억을 들고 와 베트남에 식당을 차렸다가 현지 법, 문화, 언어를 몰라 쫄딱 망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다만 어디까지나 2억의 자금력으로 가능하긴 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베트남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주재원들의 생활을 한 번 볼까. 십 년 전에 주재원들은 호화로운 궁전식 아파트에서 가정부를 두세 명, 운전기사를 한 명씩 부리며 왕처럼 살았다. 그다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사실이 그랬다. 십 년 전에는 가정부 한 명의 월급이 50달러도 안 했을 때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운전기사? 사장이나 법인장들은 한 명씩 데리고 다니지만 과장급 이하로는 꿈도 꾸기 힘들다. 전속 가정부? 요새는 한국인들이 소형 주택에 모여 살며 한 명의 청소원이 여러 집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인건비가 빠르게 올라온 것이다.

 그리고 역시 물가도 빨리 치고 오른다. 첫 문단에서 말한 식비. 십 년 전엔 500원으로 쌀국수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은 500원으로 생수 한 통이나 겨우 사먹는다. 이십 년 전엔 대학생 하숙거리의 방값이 한 달에 만 원이었다. 외국인들이 많아진 지금은 적당한 방 하나에 삼십만원까지 가는 곳도 있다. 베트남의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물가는 더욱 빨리 올라갈 것이다. 베트남인들의 월급도 같이 올라갈 것이다.

 어느 순간이 되면 베트남의 경제는 더 이상 '외국인이 살기 좋은' 수준이 아닐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대부분의 베트남인들이 자가용을 한 대씩 보유할 것이다. 시내의 고급 음식점과 바는 베트남 중산층으로 가득찰 것이다. 아리따운 베트남의 여성들이 술집과 마사지샵에서 외국남자들을 환영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지금 길거리에 나가면 아름다운 베트남 여성들과 거리를 활보하는 외국인 남성들이 한보따리다. 그 때문에 베트남 남성들의 불만이 꽤 크다. 호치민시티에 와서 가라오케와 여자 없이는 못 사는 한국 아저씨들 덕분에 호치민의 베트남 남성 중 한국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택시만 타면 택시기사가 "너도 베트남 여자 좋아하냐?"라고 물어볼 정도다. 한류? 적어도 호치민시티에서는 한류를 찾아볼 수 없다. 간간히 한국 드라마와 노래를 아직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한국에서 스페인어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비율하고 비슷할 것이다.

 베트남의 경제는 나날로 발전한다. 한국이 고속발전을 했다는 1960~2000년 사이의 한국의 경제성장률 평균은 연 5.9%였다. 베트남이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한 1986년 이래로 베트남의 경제성장률은 한 번도 6%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지금의 베트남은 한국의 90년대 수준에 와있지만, 앞으로 20년이면 베트남은 한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 비교로만 봐도 베트남의 인구는 1억으로 남한의 두 배이다. 베트남의 남북 길이는 2500km로 서울-부산의 5배에 달한다. 게다가 베트남은 인구 평균 연령, 쌀 수출량, 커피 수출량, 광물 매장량에서 모두 세계 탑 순위권에 들어간다. 심지어 앞바다에서 석유도 펑펑 난다.

 한 가지 슬픈 점은 그 때가 되면 베트남은 외국인이 살기에 더 이상 적합한 나라가 아닐 거라는 점이다.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남아있는 셈이다. 완벽한 베트남인으로 변모하든가, 적당히 즐기는 외국인으로 살다 쫓겨나든가.

2/17/2016

베트남과 한국의 시각 차에 대하여

 동일한 현상을 두고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나라 같은 도시에 사는 사람끼리도 그러할진대, 서로 다른 나라 사람끼리는 어지간할까? 한 예로 동해-일본해 표기가 있겠다.

 동해-일본해 표기를 하니까 생각나는 건데, 베트남에도 동해가 있다. 그건 바로 남중국해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중국의 남해는 분명 베트남의 동해다. 그러니 베트남에서는 이걸 동해라 부르는 것이 당연한 셈이다. 이건 중국과 베트남 사이의 입장 차이이고,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도 이런 일이 꽤 있다.

 예를 들면 월남전. 한국에서는 베트남 통일전쟁을 월남전이라 부르지만, 정작 월남(베트남)에서는 그걸 미국전쟁이라고 부른다. 조국의 통일을 훼방놓던 미국군을 몰아낸 전쟁이니 당연히 미국전쟁이란 것. 수긍이 가는 설명이다. 같은 관점에서 미국군을 도왔던 한국군은 베트남에 전혀 보탬이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한국국은 나름대로 자유 월남을 돕는다고 참전했겠지만(뭐 돈 문제도 있었을 거고), 전후 통일 베트남이 볼 때 이거는 베트남의 통일 전쟁을 방해했던 귀찮은 외국군이었을 뿐이다. 어쨌든 역사는 승자의 것이 아니던가?

 이런 식의 입장 차는 다른 사안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아오자이를 예로 들어보자. 베트남에 여행을 한 번이라도 와봤다면 반드시 봤을 아오자이. 많은 외국인들이 이 옷에 가히 환장한다. 너무나 섹시하다나. 그런데 과거에 베트남 정부가 이 아오자이에 금지령을 내렸던 적이 있었다. 그 때 금지령의 요지는 "착용이 불편해 노동에 지장을 초래한다." 였지만 신기하게도 이게 한국인들 사이에는 '아오자이가 너무 퇴폐적이라 금지되었다'는 이상한 소문으로 퍼져나갔다. 아오자이가 분명 섹시한 옷이기는 하지만 베트남 정부가 과연 그런 이유로 금지를 시켰을까?

 다음으로 달랏 여자들. 호치민시 근처(라고 해도 버스로 7시간 걸린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2500km에 달하는 긴 나라이다. 종단 기차가 이틀이 넘게 걸린다.) 에 달랏이라는 해발 1500m 고원 지대가 있는데, 프랑스 식민 시대에 프랑스인들이 휴양지로 개발하면서 준대형급 관광 도시로 성장했다. 이 곳 달랏은 여러 특산물로 유명한데, 달랏 여자들도 이쁘기로 소문이 나 있다. 특히 달랏 여자들은 피부가 너무나 하얗다는 것.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달랏 여자들의 피부가 하얀 이유에 대해 베트남인과 한국인들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는 거다. 베트남인들은 "달랏은 고원지대라 날씨가 시원하고 사계절이 분명해 피부가 잘 타지 않아 하얗다."고 하지만 한국인들은 "과거 프랑스인들이 달랏에서 오래 살다가 혼혈이 많이 생겨서 여자들이 하얗고 이쁘다."는 주장을 한다. 이 주장은 좀 부끄럽지 않은가?

 자매급으로 황당한 소문이 또 있다.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였다 보니 프랑스에서 제빵 기술을 들여와서 banh mi라는 바게트빵을 잘 만든다."라고 주장하는 한국인들이 있는데, 그러면 서울 시내 유명한 일식당은 일제 식민 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승된 것인가? 어떤 영국인이 서울에 와서 스시를 먹어보고는 "오 역시 한국은 일본 식민지 영향을 받아 스시가 맛잇군요!" 하면 한국인들이 참도 좋아하겠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지배했던 기간과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던 기간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나면 베트남이 프랑스 영향을 받아 빵을 잘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주장인지는 뻔하다.

 물론  베트남이 항상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한국인이 옳을 수도 있고,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베트남인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를 분석할 때는 균형잡힌 시각이 항상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쪽에 치우쳐 제 멋대로 쉬운 해석을 내려서는 곤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