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꼬창

태국 꼬창
태국 꼬창(2014)

5/19/2016

베트남 회고록 4부-반한감정

약 2년 전에 네팔의 히말라야를 올랐던 적이 있다. "요새 젊은 것들은 패기가 없어!" 라는 어르신들의 말에 반발심도 있었던지라 혼자 오르기로 결심했었는데(하지만 결국 가이드와 동행) 나는 그 곳에서 한국 어르신들의 어마어마한 패기를 목도하고 말았다. 취사와 쓰레기 투척이 금지된 해발 3천미터에서 라면과 김치찌개를 끓여먹고 막걸리를 마신 뒤에 취해서 네팔인 가이드에게 "야 이 놈아 춤춰봐!"라고 소리를 지르는 대단한 분들이 계셨던 거다.

거기다가 그 요리를 굳이 해먹겠다고 버너, 밥솥, 반찬, 쌀 등을 챙겨가 짐꾼 한 명당 80kg의 짐을 들고 오르게 하면서도 자신들은 스스로 마실 물 하나 들지 않고, 각종 등산모자 등산복 등산화 스틱 아이젠 등으로 무장한 상태였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 짐꾼들은 80kg의 짐을 지고 다니면서도 제대로 월급을 받지 못해 허름한 셔츠에 쪼리를 신고 해발 4,5 천미터를 오르고 있었는데 그런 대단한 일을 시키는 것이 패기라면 나름의 패기렸다. 사진 1에 보면 "한국 막걸리 팝니다. 환영합니다."라고 나와있는데 이게 진짜 환영의 의미일리도 없고, 오히려 사진2의 "No 아이젠 please"가 네팔의 자연과 현지인들을 마구 대하는 한국인들의 이미지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겠다. 거기다가 한국내 네팔인 노동자들이 학대받는 문제도 있어서 네팔 내에 반한감정이 꽤 존재하는 편인데, 과연 베트남은 어떨까?

베트남에 한 번 와본 한국 여행자들은 이 곳이 가히 천국이라고 말한다. 한국이라면 다들 좋아하고, 물가가 싼데다 놀거리가 풍부하다고. 나도 처음엔 마냥 베트남이 좋았다. 그런데 그건 지극히 여행자의 단편적인 입장일 뿐이고, 정작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많은 게 다르게 보인다.

먼저 베트남 내 한류를 얘기해보자. 베트남 내 한국 노래와 드라마가 많이 퍼져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이미지가 좋은 건 아니다. 일본의 만화와 av가 한국에 많이 퍼져있다고 해서 많은 한국인들이 친일을 하는 것은 아니듯이,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좀 좋아한다고 해서 베트남인들이 친한인 것은 아니다. 심지어 최근에 '태양의 후예'라는 군대 드라마가 베트남에 수입되면서 베트남 내 논란이 일어났는데, 주 요지는 "베트남전 때 민간인들을 학살,강간한 한국군 미화 드라마에 반대한다."이다.

베트남 중부에 가면 한국군 증오비라던가 공동묘지에서 추모를 올리는 모습을 꽤 볼 수 있다. 심지어 어떤 마을에서는 전후 4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어느날 한국군이 와서 우리를 구덩이에 몰아넣어 쏴죽이고 마을에 불을 질렀다.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아가야"라고 자장가까지 부른다고 카더라. 그런데 한국에서는 월남전 용사님들께서 자신들의 행위를 미화하기에 바쁘다. (베트콩을 몇 명 죽였다고 자랑하기도 하던데 그 베트콩은 당시 베트남의 독립군이었다.)

한-베 역사는 일-한 역사와 거의 비슷하다. 일제시대에 일본군이 한국에 와 독립군을 죽이고 여자들을 위안부로 데려갔듯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은 베트남에서 베트남공산군(다시 말하지만 분명 독립군이다! 뇌리에서 공산당 나쁜놈들 배트콩 빨갱이들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면 한국식 세뇌 교육을 탓할 필요가 있다.)을 죽이고 여자들을 강간해 수많은 라이따이한이 양산되었다. 왜 이 사실이 한국 역사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지는 뻔하다. 한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 민족이거든요... (그런데 교과서에서 고구려는 말갈인들을 복속시키고 고구려인들이 지배층으로 있었던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기술하는데, 말갈인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역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입장에서 쓰기 때문에 이에 대해 더 이상 태클을 걸 마음은 없다. 다시 오늘날의 문제로 돌아와보자. 나는 내 오토바이가 있어서 택시를 거의 안 타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탈 일이 있다. 타고 가는 동안 택시기사하고 베트남어로 얘기하다보면 으레 나오는 질문이 있다. "한국 아저씨들은 왜 그렇게 베트남 아가씨를 좋아하냐? 가라오케에 가서 술은 왜 그렇게 많이 마시나?" 정말로, 수 십번 들은 질문이지만 아직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적나라하고 쪽팔린 극사실적 질문이다.

베트남 젊은 친구들을 만나도 술 좀 들어가면 꼭 받는 질문이 "왜 한국인들은 베트남에 와서 베트남인을 무시하고 깔보나? 왜 베트남이 가난하다고 무시하는가?"이다. 정말로 웃긴게, 베트남에 와서 자신이 뭐라도 된듯이 착각하는 한국 여행자들이 꽤 있다. 예전에 갔던 라이브 클럽에서는 술에 취한 아저씨 여행자 두 명이 스테이지에 뛰어올라 똥배를 튀기며 "아이엠 코리안!"이라고 자랑스럽게 외치는 경우도 있었는데(그러면 베트남 여자들이 알아서 달려올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 뒤 일은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 어깨들에게 끌려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도 난생 처음 클럽에 와서 너무 신나 그런게 아닐까 하고 추측을 해본다. 이전에 클럽을 가본 적이 있다면 그런 식으로 여자를 만날 수 없다는 건 너무나 자명한데, 아니면 베트남이라고 쉽게 보았나?

몇 년 전에 부산에서 베트남 새댁이 정신병자 남편에게 맞아 죽었을 때는 베트남 내 여론이 정말 안 좋아져 교민들이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를 극복하기 위해 교민들은 자발적으로 헌혈 운동에 나서 자신들의 피를 베트남에 바치고 나서야 극적으로 화해가 이루어졌다고 하던데...

모든 한국인이 나쁜 것도 아니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원천적인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닐진대 이런 오해가 억울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인접하면서도 파워 차이가 나는 나라들끼리는 으레 오만과 편견의 관계가 성립되기 마련이다. 중국-한국, 인도-네팔, 일본-한국, 한국-베트남의 관계를 두고 보면 전자는 항상 후자를 오만하게 깔보고, 후자는 전자를 편견이 가득찬 시선으로 쳐다보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만연한 베트남에 대한 오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베트남 회고록 3부-소유와 존재, 그리고 꼴갑

헬조선 열풍이 불면서 이민 바람이 불고 있다. 나는 한국인이 외국으로 이민을 가려면 반드시 적용해봐야할 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살기 좋다'는 그 나라가 과연 내국인이 살기 좋은 것인지, 외국인이 살기 좋은 것인지. 일반적인 한국인들은 인구 다양성이 적고 폐쇄적인 북유럽 같은 곳에 가서 낯선 아시아 인종으로 살아갈 자신이 과연 있는지? 캐나다, 미국, 호주라고 별반 다를까? 아니다. 그 곳에서도 한인들은 한인들끼리 수다를 떨고 한국 신문을 보고 한국 드라마를 본다. 그렇다면 외국인으로 살기 좋은 나라는 어디가 있을까? 요새 여행으로 한창 뜨는 동남아-베트남, 태국 이런 나라? 한 번 생각해볼만한 문제이다.

예전에 인도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인도 여행에서 꼭 빠지지 않는 장소가 있는데, 바로 갠지스 강가이다. 한쪽에서는 시체를 화장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개들이 새끼를 낳아 기르는, 또한 밤에는 기이한 축제가 열리는 전설의 장소가 갠지스 강가다. 남들 다 간다는 이 장소에서 나도 며칠 동안 앉아서 인간(또는 시체) 군상을 바라보며 생각을 좀 해봤는데, 아무리 봐도 죽음이라는게 허무했다. 크샤트리아 계급이든 수드라 계급이든 똑같이 불타 없어지는걸 보면서 공수래공수거를 제대로 느꼈달까.

에리히 프롬의 역작 [소유와 존재]를 보면 소유적 실존양식을 배제하고 존재적 충만감을 느끼기 위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식이 기술되어 있다. 요약하자면 대략 '자기를 새롭게 하는것, 자기를 성장시키고 흐르게 하며 사랑하는 것. 운명이 우리에게 허용하는 아득한 목표지점이 어디에 있든 간에 끊임없이 성장하는 생명의 과정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실존적 인간의 올바른 행동양식이다.

얼마나 멋있는가. 무소유 사상과도 통하는 개념인데, 실제로 무소유로 세상을 살아가면 무서울 것이 없다. 가진 게 없으니 뺏길 게 없어 두려울 게 없고, 생명조차도 자신에게 일시적으로 주어진 것임을 자각하면 삶에 대한 집착이 사라진다.

나는 호치민에 혼자 살면서 그 존재적 삶의 방식을 영유하려고 해봤다. 내가 좋아하는 베트남어를 배우고, 영화와 뮤지컬을 보고, 발리우드 댄스를 배우며, 베트남 친구들을 만나 같이 배낭여행을 다니며 충분히 삶을 즐겼더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불편한 진실을 깨달았다. 나는 소득과 물가의 차이를 이용해 건물주 아들급의 부유한 백수 생활을 하고 있던 것뿐이었다. 나는 '소유'가 아니라 '소위 꼴갑'을 떨고 있었던 거였다.

베트남에서 영화 한 편이 3천원이라지만, 영화관 알바생 시급은 700원이다. 발리우드 댄스 강습은 시간당 4천원이지만 댄스 홀을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월급은 15만원이다. 기름값은 리터당 700원이지만 택시기사의 월급은 월 30만원 언저리이다. 베트남의 물가가 한국인이 느끼기에 싸다고 해서 그 업에 종사하는 베트남인에게도 똑같이 싼 것은 아니었던 거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서민의 삶은 고달프고, 부유층은 여유롭게 살아간다"

다시 첫 문단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돈 많은 한국인이 부유층으로 행세할 수 있는 베트남은 과연 천국일까? 베트남에 사는 한국 교민은 대략 15만명이다. 과연 이 15만명이 모두 행복하게 살아가냐면...글쎄. 베트남에서도 한국인들의 이미지가 급격하게 하락하는 중이다. 십 년 전 필리핀의 모습이 재현된달까. '마싸랍 코리안!'처럼.

베트남 내 거의 모든 지역을 다녀보고 단 하나의 절대 법칙을 발견했다. "한국인 접촉도와 호감은 반비례한다." 한국인을 많이 접해본 지역일수록 한국인에 대해 반감을 더 크게 가진다는 뜻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 답은 의외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