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꼬창

태국 꼬창
태국 꼬창(2014)

4/01/2016

베트남 회고록 2편-헬조선


며칠 전에 오세훈 씨께서 "헬조선? 개도국에 한 달 살면 한국에 자부심 생겨"라고 하셨다. 총명하신 분께서 괜히 그런 말씀을 하신 건 아닐 테고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을 테지 싶어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무슨 자격으로? 개도국만 10여 개국 배낭여행을 다녀봤고, 지금도 개도국에 7개월째 살고 있으니 저도 좀 할 말이 있지 말입니다.

베트남에 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이 나라에 희망이 넘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 중에 자국의 미래를 비관히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이 고도성장기 (1960-2000)에 연평균 5.9%의 경제성장을 이뤘다지만 베트남은 개혁개방정책 이후로 30년째 6% 이상의 더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그걸 반영했는지 젊은이들의 씀씀이도 거침이 없다. 

세 달 월급을 모아 아이폰 신상을 일시불로 사버리고, 일년치 월급을 아껴놓았다가 야마하 오토바이 신형도 바로 질러버린다. 이렇세 돈을 많이 쓰는 것에 대해 궁금증을 못 참고 물어본 적도 있지만 그들의 대답은 "괜찮아. 내년엔 월급이 더 높아질 거거든"이었다. 실제 베트남의 최저임금 연평균 상승률은 12-15% 에 달한다. 한국으로 치면 편의점 시급이 매년 천원씩 올라가는 셈이다.

개도국의 미래는 이렇게 밝다. 아니, 미래가 밝으니까 개도국 아닐까? 빚을 내서 아파트를 사면 매매가가 하늘도 뚫을 기세로 오르는, 그런 낙관적인 상황이 이 나라를 점령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도국에 살면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다'는 얘기가 미래 관점에서 본 건 아닌거 같고, 과연 그럼 현재 관점은 어떨까?

좀 속물적으로 보자면, 장담컨대 베트남에 살고 있는 한국 청년들은 누릴 거 다 누리면서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 물론 물가 차이에서 비롯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쌀국수 한 그릇이 1500원이고 맥주 한 캔이 500원이고 택시 기본 요금이 300원으로 시작하는 곳에서 한국 청년들이 불행을 느끼기란 어쨌든 쉽지 않다. 

이 곳 베트남은 아니고 조금 먼 나라, 인도 이야기기는 하지만 그 곳에 가면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일본 청년들이 많다. 반 년은 일본에서 편의점 알바를 해 돈을 모으고, 반 년은 인도에서 풍족하게 누리는 생활을 몇 년째 하는 거다. 그렇게 살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는 이상, 인생을 그리 즐기지 못하란 법이 없지 않은가? 80년대 엄청난 부동산 버블로 인해 자국 내에 집 살 생각을 버린 일본 청년들은 그렇게도 살아가는데, 한국의 청년들이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베트남에 산 지 7개월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는 한국에 자부심이 들지 않는다. 

아! 지금 나는 여기서 일자리를 찾고 있지만 한국 기업은 최악의 근무조건을 자랑한다. 항상 반복되는 야근과 회식은 그들의 일상이다. 한국인들의 일에 대한 열성은 베트남 내에서도 소문이 자자한데, 어학당 선생님들마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이다. 어떻게 아냐고? 왜냐먄 회사원 아저씨들이 야간 코스를 등록해놓고 수업 때마다 야근과 회식이 있다며 결석 통보를 하기 때문에...

아무튼 그렇게 어학당 선생님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때면 주변의 외국 친구들은 나를 돌아보고,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그러고보니 이런게 바로 자부심을 느끼는 포인트구나!